▲ 이채린 원주 호저초 교사
▲ 이채린 원주 호저초 교사
교육부는 지난 17일 2022학년도,현재 중학교 3학년의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향을 발표했다.먼저 수능 위주 전형의 비율을 30%이상으로 대학에 권고했다.정시 확대를 45% 이상으로 외쳤던 사람들의 주장에 비하면 적은 비율이다.비율을 줄이고 수능 절대평가를 바랐던 사람들에게도 만족할 수 없는 안이다.빼려고 했던 ‘기하’,‘과학Ⅱ’는 거센 반발로 수능 범위에 포함됐다.수능의 공정함을 외치는 사람들과,학생들의 숨통을 트이고 자기 선택권을 주라고 외치는 사람들 어느 쪽도 만족할 수 없는 개편안이 나왔다.어쩌면 대입 제도 개편이 우리나라에서는 무척 예민한 문제라서 차라리 양쪽을 다 무시하는 안으로 내놓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세월,우리나라 학생들은 객관식 시험 문제를 잘 푸는 공부에 매달려왔다.4개 중에 하나,또는 다섯 개 문항 가운데 정답을 골라내는 ‘연습’을 했다.수업 시간에 열심히 학습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모자란다.문제집을 사서 풀고,문제의 유형을 파악하고,오로지 문제 풀이에 매달린다.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해 달달 외워가며 풀었던 문제들.농담 반,진담 반으로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 잊어버렸다’는 말을 많이 했다.나는 어떤 사람인지,내 꿈이 뭔지,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이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못한다.생각할 시간도 없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이런 가혹한 입시제도를 거쳐 왔다.‘너무 힘들었다’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라면 다시는 안 돌아간다’ ‘만약 돌아가게 된다면 절대 놀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할 것이다’ 같은 말들을 한다.그만큼 대입이라는 거대한 압박을 견뎌냈고 고통스러웠다는 뜻이다.그런 어른들이 ‘공정함’을 외치며 정시 확대를 주장한다.문제풀이에 지치거나 말거나,자기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없거나 말거나,공정하게 시험 점수로 대학에 가자고 한다.수능의 공정함에 대한 신화는 여러 차례,많은 지면,방송에서 깨뜨리는 말을 했으나 객관식 시험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여전히 견고하다.쉽게 깨뜨릴 수 없다.

아이들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어른들이 자꾸만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이 문제다.‘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잘 살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아이들의 삶이 통째로 흔들린다.대입 제도 개편에 이렇게 민감한 것도 ‘좋은 대학=좋은 직장’이라는 공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대입 제도를 바꾸려고 할 때 ‘어떻게 바꾸면 누구에게 유리한가?’를 먼저 따진다.실제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왜 수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릴까? 이미 ‘좋은 대학=좋은 직장’이라는 공식은 깨졌고,어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자신들과 똑같은 공부를 하라고 강요한다.

지금 세계는,우리나라는,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며 협동,의사소통 능력을 말하고,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고,민주시민교육을 외친다.그러면서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또 다시 다섯 문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공부를 하라고 강요한다.이대로는 안 된다.제발,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삶을 직접 부딪히며 살아갈,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위한 대입 제도 개편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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