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자유민주주의의
주창자라면 대체복무제는
타인의 양심을 존중하려는
사회적 배려로 생각해야
배신자에 대한 응징은
국가주의자의 발상일 뿐

▲ 송현주 한림대 교수
▲ 송현주 한림대 교수
지난 주말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축구팀이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하지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이유는 금메달이 아니라 손흥민의 병역면제였다.그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병역을 미룰 수 없는 나이다.이제 전성기에 접어든 세계적인 축구 선수의 경력이 단절될 위기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그의 가족,소속팀과 팬들,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일반 국민들까지 손흥민의 병역면제를 기뻐하고 축하했다.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병역면제가 아닐 수 없다.나도 물론 그의 금메달과 병역면제를 기원했고 또 열광했다.축구를 통해 공동체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기에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병역면제가 합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편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이 벌어지기 이틀 전,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공개변론이 열렸다.논점은 생각보다 복잡하다.병역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데,과연 양심은 병역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되는가? 하지만 본질적 쟁점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인가’이다.2004년에 확립된 대법원 판례는 국방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분단과 대치라는 안보 상황이 주된 논거다.소수의견은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더 보장돼야 하고,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의무의 충돌을 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역거부자에게 과도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즉 국가가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 병역거부자들이 생겼으니 그들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이번에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려도 그 의미는 한시적일 뿐이다.올해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도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1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징역형을 견뎌내야 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은 큰 진전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감정은 법적 논리나 대체복무제 도입과는 별개의 문제인가 보다.병역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공동체를 배신하는 일로 간주되고,그 이유가 ‘양심’이니 더 화를 돋우게 된다.물론 국방의 의무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 훈련을 받는 방식,즉 병역을 거부하고 ‘양심’은 선악의 구분이나 도덕성과는 무관한,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내적 믿음을 의미할 뿐이다.하지만 오해가 낳은 불만과 분노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거기에 ‘여호와 증인’이라는 특정 교파에 대한 편견까지 덧붙여진다.그런데 이제 그들을 병역법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됐으니 대체복무를 새로운 징벌 수단으로 삼아 과도한 복무기간과 업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최소한 자유민주주의의 주창자라면 대체복무제는 타인의 양심을 존중하려는 사회적 배려로 생각해야 한다.배신자에 대한 응징은 국가주의자의 발상일 뿐이다.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영광스러운 병역면제를 기뻐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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