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주동 금융감독원 강릉지원장
▲ 엄주동 금융감독원 강릉지원장
보험의 등장은 그 역사가 깊다.BC 1700년경에 나온 함무라비 법전에는 선장이 금융업자에게 위험비용을 지불하면 항해도중 해적을 만나 배를 뺏기거나 폭풍우로 배가 침몰했을 때 배와 관련된 부채를 모두 면제받는 내용이 나온다.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혼인이나 장례 등 큰 행사가 있을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물질이나 노동력을 상호부조하는 ‘계’가 보험의 역할을 대신해 왔다.이후 1897년 대한제국 출범 무렵 이완용의 형인 이윤용이 대조선보험회사를 설립하여 ‘소 보험’을 판매한 것이 근대보험의 효시로 알려지고 있는데,당시 가계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던 소에 대해 엽전 한냥을 내면 소의 털색깔,뿔 등이 기록된 증서를 주었고 소가 죽으면 큰 소는 100냥,중간 소는 70냥,작은 소는 40냥의 보험금을 지급하였다고 한다.그러나 보험회사 직원들이 보험가입을 강제하고,가입되지 않은 소의 경우 매매를 금지하여 양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100일만에 판매가 중단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태동한 국내 보험산업은 이제 매년 계약자가 납부하는 보험료만 200조원이 넘는 세계적인 시장으로 발돋움했다.올해초 기재부와 금융소비자연맹이 전국 1000가구의 보험가입 실태를 공동조사한 내용을 보면 가구당 평균 12개의 보험을 가입했고,월 소득의 18%에 해당하는 103만원 가량을 보험료로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이번 조사에서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가입 경위였는데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18.2%에 불과했고 친지나 지인의 권유 등에 의한 가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우리가 ‘보험에 가입한다’는 능동적 표현보다 ‘보험을 들어준다’는 시혜적 표현에 익숙한 이유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러한 지인 위주의 영업은 아무래도 불완전판매로 이어지기 쉽다.보험은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위험을 보장하기 때문에 본래 상품구조가 복잡한데다 최근에는 변액,유니버셜,연금전환 등 다양한 부가기능이 더해지면서 상품의 이해가 더욱 어렵다 보니 보통 지인인 설계사를 전적으로 믿고 이들이 가리킨 란에 바쁘게 서명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이렇게 계약자가 내용도 잘 모른 채로 판매된 보험들은 상황에 따라 보험료의 상당부분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등 계약자의 손실로 귀결되기 마련이다.불완전 판매의 가장 흔한 유형이 보험을 목돈 마련을 위한 저축과 혼동하는 경우다.앞서 보았듯이 보험은 본질적으로 계약자가 위험을 보장받는 대신 댓가인 비용을 지불하는 상품이다.여기서 비용은 보험금 지급을 위한 위험보험료와 설계사에 지급되는 수수료 등 각종 사업비를 말한다.따라서 만기시 환급금이 나오는 보험일지라도 회사는 납입된 보험료에서 이같은 비용들을 먼저 차감한 후의 잔액을 적립하여 계약자에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환급금이 납입 보험료보다 많기가 어렵다.

보험은 ‘저축이나 수익상품이 아니라 내가 비용을 지불하는 보장상품’이라는 점을 꼭 기억하자.나중에 주위에서 보험 가입을 권유받았을 때 이 점만 명심하고 가입여부를 결정한다면 미래의 후회와 금전적 손실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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