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학식이 있으나 벼슬하지 않는 사람을 선비라 불렀다.사전에도 학식 있고 행실 바르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되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관을 정의한다.다만,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넓게 혹은 좁게 해석돼 온 것 같다.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申欽·1566~1628)은 ‘사습편(士習篇)’이라는 산문에서 이런 해석에 덧붙이기를 선비는 성품이 고결하며 탐욕이 없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풀이 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정치인과 관료,공직자와 지식인을 포함한 사회지도층에 속한다.그는 이런 범주에 드는 이가 드물다며 스스로 선비라 으스대는 세태를 꼬집었다.그들이 숭상하는 것은 권세이고,힘쓰는 것은 이익과 명예이며,밝게 아는 것은 시대의 유행이고,좋아하는 것은 담론이고,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겉치레이고.잘하는 것은 오직 경쟁뿐이라는 것이다.이를테면 선비 6 가지 적폐쯤 될 것이다.

이런 사이비 선비는 권력자 눈치만 살피다가 아는체 해주면 우쭐댄다는 것이다.이런 자를 선비라고 친다면 눈·귀 달린 이 치고 선비 아닌 자가 없고,이런 자를 선비라고 하지 않는다면 나라 안을 다 뒤져도 선비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했다.그러나 이것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세상의 눈총이나 비난을 받는 것으로 그만일 수 없다.이런 얼치기 선비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오늘날 선비에 해당하는 정치인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에게도 뜨끔한 일갈이다.쇠꼬챙이로 무덤을 쑤시는 도굴꾼이 끼치는 피해는 한 구의 마른 시신에만 미치지만 갓끈을 드리우고 옷을 차려입고 손뼉을 치고 시속(時俗)을 좇아가는 자가 끼치는 피해는 윤리 도덕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친다고 지적했다.권세를 좇는 자의 이런 추태가 무덤을 파는 도굴꾼의 그것보다 더 볼썽사납다는 것이다.

어찌 역사속의 이야기만 이랴.최근 서울 상도동 유치원건물 붕괴사고를 보면 과연 우리시대 선비들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5개월 전 부터 건물붕괴 위험이 곳곳에서 감지·경고가 있었는데도 당국은 이렇다 할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자기방어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이 참변을 당할 뻔 했다니 소름이 돋는 일이다.세월호 참사를 벌써 잊은 것인가.시대는 바뀌어도 선비들의 행태는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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