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인 듯 일상 아닌, 만들어진 트루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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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아는 사람들’이 된 연예인들.사람들은 잘 다듬어진 모습 뒤로 숨겨진 그들의 일상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보인다.연예인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그래서 ‘관찰예능’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이 오랜 시간동안 인기몰이를 해왔다.관찰예능은 화려한 연예인들의 삶 뒤에 감추어진 일상이 일반인들과 다를 것 하나 없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여성 연예인들의 민낯,위생관념을 찾아보기 어려운 남성 연예인들의 집안을 가감없이 비추는 카메라는 어렵지 않게 ‘기대성’을 벗어난 ‘의외성’을 포착할 수 있었고 그 의외성은 참신하게 받아들여져 그들과 시청자들의 거리를 좁혀온 듯 싶다.연예인들의 가족과 지인들의 자연스러운 동반 출연은 그들을 시청자들의 삶 속으로 한층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 결과 관찰예능 프로그램은 공중파는 물론이고 케이블TV까지 이미 상당부분을 점령한 듯 보이고 이 추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나 혼자 산다’,‘미운 우리 새끼’와 같은 프로그램은 1인 가구의 증가,만혼,비혼의 문제를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고 ‘동상이몽’,‘백년손님’ 등은 우리나라에서의 결혼 생활,현실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효리네 민박’처럼 연예인과 비연예인(흔히 사용하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도식은 자꾸 고개가 갸웃거려진다.그래서 이 글에서는 ‘일반인’이 아니라 ‘비연예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경이로운 시청률을 달성한 프로그램도 있다.

그저 관찰만 할 뿐인데도 인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그래서 관찰예능 프로그램은 관찰 대상을 달리하며 증식하고 있고 시청률에 편승하여 변주된 다양한 버전의 프로그램이 여전히 ‘성업중’이다.레드오션이니 철 지난 프로그램이니 하는 비판도 있고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새로운 관찰예능은 속속 기획,제작되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아이디어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관찰예능에 대한 잠재적 수요가 생각보다 폭넓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실제로 이번 가을 개편 시즌을 맞이해서도 공중파와 케이블TV의 관찰예능 프로그램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관찰예능은 말 그대로 그저 ‘관찰’하는 방식을 취하는 지극히 간단한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그러나 그 뒤에 붙은 ‘예능’의 단어에는 재미와 시청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방송의 불편한 생리가 담겨 있다.이러한 프로그램의 초창기에는 연예인들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전화 통화를 하는 사소한 일상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화려해 보이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를 줄 알았는데 나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일상에 비일상적인 일들이 하나둘씩 섞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이벤트가 일상을 대체하고 있다.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일상을 몇 년이나 본다는 건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그러니 일부 출연자들은 어쩌면 방송이 아니라면 시도하지 않을 일들을 무리해서 시도하기도 한다.작은 섬의 모든 중국요리점을 돌면서 자장면을 먹거나 소주병을 모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거나 집안에 수족관을 들여놓거나 하는 비일상적 일상.심지어 지인들의 개인사와 다이어트를 신경 써 줘야하고 관상도 보고 맞선도 봐야 한다.실제로 프로그램에는 출연자들이 처음으로 도전하거나 경험하는 일들도 적지 않다.한 개인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지만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일상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오늘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짧은 자막 이면에는 출연자들의 “오늘은 또 대체 뭘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여전히 ‘관찰예능’이라는 일상성,부작위성을 담보로 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관찰에는 작위성,시청률을 염두에 둔 편집의 기술이 ‘일상의 진정성’을 대체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시청률에 편승하여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오가는 일종의 거래 또는 홍보가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일부 출연자들이 무리하게 먹방을 시도한다는 느낌이 가끔 들곤 하는데 그때 주위의 사람들은 어김없이 “광고 들어오겠는데”라고 한 마디를 던진다.연예인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자신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공공성을 담보로 한 방송에서 특정 목적을 염두에 둔 듯한 행동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또?”라는 생각이 든다.때로 일부 물건들은 시청률 높은 방송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판매실적을 올리기도 한다.그러니 광고를 염두에 둔 듯한 발언과 행동들에 곱지 않은 시선이 갈 수밖에 없고 광고주와의 유착 관계에 대한 의심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케이블TV는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하지만 공중파 방송은 인터넷이나 케이블TV와 형식적인 면만 보더라도 분명히 차별점이 있다.시청률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공공성에 대해서 적어도 진정성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 봐야하는 것은 아닐까싶다.


>>> 유강하 교수

연세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신화)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고전 다시쓰기와 문화 리텔링’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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