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1569∼1618)은 당대 명문가였지만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으로 조선사회의 봉건 신분질서와 관습을 뛰어 넘으려다 단단한 유교 사회로부터 이단아로 몰려 결국에는 역모 사건으로 49세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혁명가였다.그는 아버지 초당 허엽과 어머니 강릉김씨 사이에서 강릉 교산에서 태어났다. 이복형을 포함해 3남 3녀의 막내였다.하지만 불교를 신봉하는 등 유교 사회의 정해진 틀을 거부하고 서얼들과 어울리면서 26세에 벼슬길에 올라 형조판서까지 지내는 동안 여섯 차례나 탄핵을 당했다.당시 기득권세력인 사대부들로부터 집중견제를 받은 것이다.

허균은 1618년 8월 역모에 연루된 지 1주일 만에 사형된다.진짜 역모에 가담했다기보다는 당시로는 용인될 수 없는 진보적 행동이 훈구대신들로부터 적폐 인물로 낙인 찍힌 것이다.이는 허균이 사형된 후 기록한 광해군일기에 인간성을 폄하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서 알 수 있다.요즘으로 치면 경범죄 처벌수준을 사형선고를 내리고 곧바로 집행한 것이다.더욱이 역모를 꾸몄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도 능지처참을 당했다.영의정을 지낸 기자헌은 “신문하지 않고 사형이 결정된 문서도 받지 않은 채 죄인의 범죄사실을 진술한 말로만 사형에 처한 죄인은 없다”며“훗날 반드시 이론이 있을것”이라고 했다.

그 후 정확히 400년이 흘렸다.4일 오후 강릉아트센터에서 허균 400주기 추모 전국대회가 열리는 등 7일까지 다채로운 선양·재조명사업이 진행된다.6∼7일에는 교산 허균 문화제가 초당동 일대에서 열린다.6일 오후 강릉시청에서 허균 400주기 추모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허균 선생의 사상과 문학세계를 집중 조명한다.허균 400주기 추모 전국대회 추진위원회는 허균 선생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신원운동,처형장소인 서울 서소문공원 표지석 설치 등 다양한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다.

허균의 호는 교산(蛟山)이다.교산에서 교(蛟)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한다.또 교산은 그가 태어난 강릉의 사천 진해수욕장 앞에 있는 야트막한 산을 말한다.허균은 역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홍길동을 통해 400년 후에도 후손들이 잊지 않고 있어 죽어서는 용이 된 혁명가로 기억되고 있다. 권재혁 논설위원 kwonj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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