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사진 한 장,
일기,가계부,월급봉투
일상의 기록들이 쌓여
역사적 기록·문화적 힘
마을의 이야기,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록
‘지방소멸’ 숙제 푸는
노력의 토대가 되길

▲ 유현옥 한국여성수련원장
▲ 유현옥 한국여성수련원장
지난달 한국여성수련원에서는 조금 특별한 워크숍이 열렸다.태백,도계,영월,정선 지역의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자서전을 쓰기 위한 오리엔테이션이었다.과거 광산지역에 직간접적으로 몸담고 생활했던 지역민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강원도가 추진하는 사업이다.한국여성수련원이 그 실무를 맡은 것인데 오래전부터 문화예술교육과 연계해 마을기록을 해온 나도 강의를 맡아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기록처럼 보이는 것들이 동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공동 경험이고 그것이 마을의 기록,더 넘어서 동시대의 기록이자 역사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의 사진 한 장,일기,가계부,월급봉투….일상의 기록들이 쌓여서 역사적 기록이 된다.그리고 기록은 한발 더 나아가 지역의 문화적 힘이 된다.요즘 지역공동체 활성화 작업이나 도시재생은 이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와 마을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마을이 갖고 있는 역사적 맥락,살아온 이야기,공간이 갖는 특징,이런 것들이 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문화적 가치를 건져내려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해왔던 나의 일이기도 하다.이번 강의를 위해 다시 예전 작업 자료를 꺼내보며 마음이 참 따뜻했다.6·25전쟁이 어르신들의 삶에 얼마나 큰 굴곡을 남겼는지,결혼생활이 얼마나 큰 불평등구조이고 여성을 억압했는지,정부의 통제적인 가족계획정책이 우리 어머니들의 몸을 얼마나 강압했는지….어르신들의 삶으로 들어갈수록 그 안에는 수많은 근대사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개인 또는 몇몇 공동체의 관심과 아주 작은 지원체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산발적이다.주위에도 같은 작업을 하는 분들이 여럿이지만 우리는 서로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격려할 뿐 여러 어려움으로 마음에 담아둔 긴 호흡의 작업을 쉽게 펼치지 못한다.그래서 광산촌 어르신들의 자서전 작업은 강원도의 지역 기록의 새로운 전향점이다.

자서전 작업뿐만 아니라 구술하기,사료 찾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원도가 기록되어야 하고 이 기록을 활용해 지역의 힘을 찾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를 꿈꾸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이다.역사적인 뿌리가 깊고 마을도 꽤 크다.일터와 삶터를 이곳으로 정하고 생활한지 1년이 되어간다.조금 느리게 사는 꿈을 품고 이 바닷가 마을의 삶을 시작했다.풍경은 넉넉하다.아주 오래된 고욤나무가 마을길에 있어서 오가다 눈인사를 하고 집 앞에서 4,7일 장이 열리면 주전부리를 하거나 별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사며 어슬렁거리는 여유,바닷가가 일상의 산책길이도 한 시골살이는 로망을 이룬 듯 하고,지인들의 부러움도 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이 하나둘 다가온다.마을은 크지만 빈 상가와 주택이 곳곳에 있고 해가지면 사람의 이동이 거의 없어 동네는 적막하다.카페에서 차 한잔하거나 공연이나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도 없다.한담을 나눌 수 있는 이웃도 없다.강릉시내를 다녀오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고 교통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객지 생활의 답답함보다 시골 마을이 갖는 소멸의 과정인 듯해서 마음이 무겁다.얼마 전에는 마을의 윗동네를 운행하는 버스노선이 없어진다 하여 시끄러웠다.강원도 곳곳이 인구감소와 경제침체로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지방소멸’,우리 앞에 바싹 다가온 이 숙제를 풀기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그리고 마을의 이야기,그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록이 이 노력의 토대가 되었으면 한다.이 희망으로 오늘도 나의 동네 살펴보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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