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영월 광영 레미콘

photo_caption
영월군 남면 북쌍리 서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주식회사 광영레미콘(대표이사 박실광)은 지역에선 제일가는 중소기업이다. 박 대표를 비롯한 40여명의 임직원들은 레미콘 공장의 각종 시설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생산 현장이다. 광영레미콘은 지난 88년 6월 29일 '평생 직장의 이념과 한가족 같은 인화’를 바탕으로 창업돼 지역과 도내에서 견실한 중소기업체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88년 창립… 지난해 54억 매출 '품질 제일' 원칙

 창업 이후 양질의 레미콘 제품을 생산하는 것만이 회사가 살아 남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품질 제일주의 원칙을 착실히 지켜 89년도에 한국공업규격 표시허가(KS)를 취득한 뒤 당시 영월 동강2교 가설공사현장에 도내 레미콘 업계에서는 최초로 400㎏/㎠의 고강도 레미콘을 생산 공급하면서 품질과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91년과 92년에는 현대시멘트 영월공장 설립 현장에 회사 기술진이 투입되어 양질의 레미콘을 적시에 공급, 기한 내에 준공할 수 있게 하면서 회사는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광영레미콘은 96년에 국세청장 표창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아 대내외에 회상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특히 같은 영월군 지역이지만 그동안 태백지역 레미콘업체에게 양보를 했던 상동읍과 중동면 지역 건설 현장에다 양질의 레미콘을 보다 신속히 공급하기 위해 97년 3월 중동면 화원리에 제2공장을 설립, 시간당 최고 120㎥/HR의 레미콘을 생산 공급하면서 제2창업의 이념으로 새로운 도약을 맞기 시작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광영레미콘은 98년 본사가 제정한 제2회 강원중소기업대상에서 도내 레미콘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관련 업계로부터 회사의 틀을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엄청난 시련도 겪었다. 10억원 이상을 투자한 제2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전에 불어닥친 IMF한파는 어김없이 광영레미콘에도 찾아와 회사는 경영상 중대 위기에 봉착한 것.
 회사 임직원들은 건설 경기 불황으로 구조 조정과 봉급 삭감 등의 대책까지 검토하는 등 회사 경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으나 단 한명의 구조 조정 없이 위기를 모면했다.
 그 특단의 대책은 다름 아닌 전 임직원의 봉급 30% 자진 반납. 이를 통해 회사 임직원은 내부적으로 보다 단합된 분위기를 조성해 제2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이와 함께 광영레미콘은 2001년부터 기간국도 사업인 38번 국도 4차선 확포장 공사 현장에 양질의 레미콘을 본격적으로 공급하는 등 점차 살아 나고 있는 건설 경기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해 현재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표창을 수상하는 등 영월지역 우량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굳혀 나갔다.
 작년 회사 매출액이 54억원에 이를 정도로 발전했지만 임직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 목표로 설정한 60억원 매출액 달성을 위해 오늘도 분주히 뛰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박 대표를 비롯한 전체 임직원들이 '평생 직장의 이념과 한가족 같은 인화’를 바탕으로 최고 품질의 레미콘만을 생산 공급하면서 각종 공사 현장의 부실 시공 방지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현재 직원들의 고등학생 자녀에게 매년 한명당 100만원의 학자금을 지원하는 등 복지와 근무 여건 개선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한편 현재 침체된 지역 경제의 호전 상황에 따라 사업 확장이나 신규 사업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박실광 대표(57)와 임직원들은“그간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완벽한 공사 시공을 위해 최고 품질의 레미콘을 제때에 납품해 고객 만족 극대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오늘도 각자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영월/방기준 kjbang@kado.net

[인터뷰] 회사·지역 공존 공동체 지향

 광영레미콘의 박실광 대표이사(57·사진)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개인 신변은 물론 회사 경영이 어려울 때에도 웃는다. 그 웃음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당초 박대표는 76년부터 서면 쌍용리에서 벽돌공장을 운영하면서 영월과 인근 충북 제천시에 벽돌을 생산해 판매했다. 때는 변변한 시설도 없이 손으로 벽돌을 찍던 시절.
 그러면서 박대표는 당시 영월은 물론 평창과 태백지역에도 레미콘 생산 공장이 없던 것에 착안, 항상 레미콘 공장을 설립하는 꿈을 착실히 키워 왔다.
 여건이 마련된 88년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대표는 과감하게 도내에서는 일곱번째로 영월 남면 북쌍리에 레미콘 공장 설립의 꿈을 실현했다. 오래 품어 왔던 꿈이 실현된 것이다.
 '평생 직장의 이념과 한가족 같은 인화’를 창업 이념으로 삼은 박대표는 이후 광영레미콘을 지역은 물론 도내에서도 견실한 중소기업체로 발전시켜 왔다.
 박대표의 한가족 같은 인화는 IMF를 맞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불황으로 회사는 10명의 구조 조정 위기를 맞았으나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30% 봉급 반납으로 고통을 분담, 인원 감축없이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당시만 생각해도 온몸이 오싹해진다. 내 가족 같은 직원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 인원 감축은 최악의 대안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직원들과 함께 수 차례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결과 고통을 분담하자는 의견이 나와 이를 받아 들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박대표의 직원들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고등학교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한 전체 직원 생명보험 가입 등으로 구체화 됐다.
 또 회사 경영이 점차 호전되면서 매년 재단법인 영월장학회와 영월소년소녀선도장학회의 장학기금 납부, 인근 연당중학교 불우 학생 2명에 대한 매월 생할비와 학자금 지원 등의 지역 환원 사업에도 충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대표는 지역 사회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영월군육상경기연맹 회장과 당시 영월경찰서 보안지도위원장, 재단법인 영월장학회 이사, 내성라이온스클럽회장, 법무부범죄예방자원봉사위원 영월지역협의회 위원 등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각계 각층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일했다.
 현재 박대표는 회사 차원의 장학재단 설립을 꿈꾸고 있다. 레미콘 공장 설립이 1차 꿈이었다면 이는 2차 꿈이다.
 "IMF가 없었더라면 그 꿈은 이미 실현됐을 것"이라며 아쉬워 하는 박대표는 회사와 지역이 공존 공생하는 공동체 삶을 지향하고 있다.
 영월/방기준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