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창수 소설가
▲ 하창수 소설가
필자가 소설가로 데뷔한 건 1987년 가을이었다.그 3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가는 꿈의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았다.대학에서 경영학을 열심히 공부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거의 유일한(!) 꿈이었다.돌연히 꿈을 바꾸게 만든 건 군대 - 좀 디테일하게 말하면 ‘군대에서 맞닥뜨린 오만가지 폭력’이었다.구타와 욕설이,그러니까 폭력이,공공연히 묵인되고 조장되던 시절이었다.그 폭력을,그 폭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성의 가없는 후퇴를,그 후퇴가 만들어낸 존재의 참담한 몰락을 어떤 식으로든 기술해내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아내기 힘들었다.졸업까지 한 해를 남겨놓고 있던 경영학도는 결국 속절없이 원고지 앞에 앉았고 그로부터 30년을 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필자의 작품들 가운데 두 권의 장편과 예닐곱 개의 중단편은 군대 내지 군대의 폭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간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줄잡아 20여 편에 이른다.한때는 ‘군대소설만 쓰는 작가’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지만 필자에게 그건 일종의 통과의례였다.이 목록들 속에는 특정종교(‘여호와의 증인’)를 가진 청년이 입대와 함께 마주치게 되는 폭력과 억압적 상황을 그린 장편소설 ‘젊은 날은 없다’가 포함되어 있다.우연히 알게 된 후배의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졌던 그 소설의 제목이 적시하듯,군에 입대하는 순간 그의 ‘젊음’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젊음이 송두리째 강탈당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입대기간만큼의 수감생활과 거기에서 가해지는 온갖 종류의 폭력이었다.그가 겪은 고통과 쓰라림은 소설을 쓰는 내내,필자의 몫이 되었다.그를,그리고 그를 이어 그가 겪은 것과 똑같은 고통들을 고스란히 겪어야 할 또 다른 ‘그’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대체복무’뿐이었지만 30년 가까이 전의 이 땅에는 얘기조차 꺼낼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 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취지의 대법원 판결 기사를 보면서 맨 먼저 떠오른 게 이럴 때 흔히 쓰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었지만 늦은 걸 한탄하기엔 반드시 내려져야 할 판단이 이제라도 내려진 것에 30년 묵은 체증이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이 기분은 마치 26년 전 필자가 쓴 장편 ‘젊은 날은 없다’에 대해 보상을 받은 듯했다.제대를 한 뒤에도 후배의 삶에는 늘 ‘병역법’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더구나 그가 결혼해 낳은 아들이 장성해 곧 병역문제라는 호된 ‘홍역’을 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하지만 이런 그늘과 홍역을 대법원 판결이 말끔히 씻어준 건 아니다.그동안 턱없이 오랜 세월을 밀쳐두기만 했던 대체복무법을 국회가 이제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것만이,수만 명에 이르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거대한 ‘국가적 폭력’으로부터 진정으로 구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결과 관련된 기사를 훑던 필자의 눈에 최근 한 독립언론이 집중 탐사를 통해 밝혀낸 뒤 모든 언론이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기사들이 다투듯 밀려들었다.기사들은 모 인터넷공유업체 대표의 비열한 폭력행위로 가득 차 있다.사실 그의 행태는 ‘비열한’이라는 형용사로는 모자란다.차라리 서글프다는,안타깝다는 표현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그가 대규모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는 기사에선 어떤 식으로든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지경이다.기대하는 건 다시 ‘법’이다.양심적 병역거부에 죄가 없음을 판단해낸 그 ‘법’이 다시 한 번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폭력을 엄정하게 벌하여 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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