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응원도 좋지만 연말엔 ‘살아있는 너’를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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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연말이 세기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해를 거듭할수록 연말은 함박눈이 내리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는 낭만적 시간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연말을 지나 새해로 가는,그러니까 ‘미래’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와 더불어 막연한 불안감이 생겨난다.개인적인 감상이기는 하지만,이런 느낌은 오랜 시간 보아왔던 영화들,더 정확하게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 몇 편의 영화와 연결되어 있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2002),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Her,2013),윌리 피스터 감독의‘트랜센던스’(Transcendence,2014)가 그 영화들이다.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이들 영화가 보여주는 미래의 명암은 매우 선명하다.‘마이너리티 리포터’는 예비 범죄자를 사전에 걸러내어 강력범죄 제로 퍼센트의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인간의 바람이 만들어낸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영화 속에 그려지는 세상에서는 예비 범죄자로 단죄된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 외에 모두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간다.영화 ‘그녀’의 ‘사람’주인공(남자주인공은 사람이지만,여자주인공은 목소리뿐인 운영체계다!) 시어도어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자발적인 ‘인간관계 단절’을 선택하지만 사만다라는 이름의 운영체계와 사랑에 빠진다.시어도어의 메일을 체크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며 그의 감정을 세심하게 읽어주는 사만다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연인이다.그러나 사만다는 8316명과 시어도어와 같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641명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트랜센던스’에서는 인간의 두뇌가 업로드된 슈퍼컴퓨터가 선으로 연결된 세상을 잠식해나가는 가상의 미래를 보여준다.“너에게 자각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라는 질문에 “어려운 질문이네요.당신은 증명할 수 있나요?”라고 되묻는 슈퍼컴퓨터는 이미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 것 같다.

세 영화의 공통점은 과학의 진보가 가져다주는 거부할 수 없는 이점이다.범죄 없는 안전한 도시,언제 어디서든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운영체계,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슈퍼지능.그런데 이때의 과학은 이익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수감되고 운영체계는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사실을 알고 실망하는 것뿐이다.(‘나’는 다른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운영체계에 돈을 지불한 한 명의 유저에 불과하므로) 슈퍼컴퓨터는 개인의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내 몸의 화학신호를 모두 분석하고 몸과 감정 상태를 체크하여 적절한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인간의 안락한 삶을 위해 고안되었지만,결국 인간 위에 군림하는 기계들이 잠식해나갈 세상을 보는 느낌은 유쾌하지 않다.흥미진진한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상상력은 이미 현실이 되어 있거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이미 몇몇 나라에 도입돼 시행 중인 ‘프리-크라임’(pre-crime) 시스템,인간의 감정을 읽어주고 대화할 수 있는 로봇,핸드폰과 가정에 구비된 AI 비서는 영화적 상상력이 공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하지만 영화에서 구현된 미래가 기시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주인공 톰 크루즈가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사용하는 첫 장면이다.예비 범죄자를 찾아내는 이 진지한 장면의 배경음악으로는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이 쓰였다.아마도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벽한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물론 이들 영화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만을 던져놓지는 않는다.

폐기되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사만다가 떠난 후 친구에게 위로받고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시어도어,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에블린과 윌.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영화의 진부한 결론이 유치하게 보이기도 하지만,한편으로는 그 진부함에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비어있던 12월의 다이어리가 각종 연말모임으로 빼곡하게 차기 시작했다.서로 바쁘다고 얼굴도 못 보고 지냈던 사람들이 지나가며 가볍게 던졌던 ‘한 번 보자’는 진부한 약속을 실천하는 크고 작은 모임들이다.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연말모임을 생각하면 연말이라고 이렇게 꼭 만나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이렇게라도 ‘살아있는 너’를 보고 싶어 하는 인류의 오래되고 낡은 습관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카톡도 좋고,페이스북의 ‘좋아요’하는 응원도 좋지만,올해는 다른 일을 미루더라도 사람들을 만나야겠다는,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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