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모임이 잦다.아쉬움과 보람이 교차하는 시간,너나 할 것 없이 가는 세월을 잡아두고 싶을 것이다.지난 주말의 송년회도 그런 분위기였다.대기업과 금융권에 몸 담았던 지인들은 은퇴했거나 새로운 일거리를 찾고,중견 기업에 입사한 몇몇은 회사 중역이 됐다.이 날의 주제는 직장에서의 태도.일을 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대화 주제는 ‘꼰대 문화와 갑질’로 모아졌다.‘꼰대 짓 하면 망하고,경청하면 흥한다’는 얘기.흘려듣기엔 그 의미가 새삼 깊었다.

시골 출신으로 어렵게 지방대학을 졸업한 한 친구는 중견 그룹의 2인자 자리까지 올랐다.그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잘한 게 동료와 후배들에게 밥 사주고 얘기 들어준 것”이라며 순간의 이득을 위해 동료를 헐뜯거나 뒷 담화를 한 사람들은 여지없이 도태됐다고 나름의 생존 철학을 들려 줬다.혼자 잘 나서 되는 일은 없다고도 했다.그러면서 직장생활 최고의 꼴불견으로 꼰대 짓을 꼽았다.그가 정의한 ‘꼰대 짓’은 자신에겐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에겐 간섭과 오지랖을 일삼는 행위.나이 먹었다고 도통한척 하지 말란 경고.

꼰대 짓 가운데 가장 몹쓸 행위가 괴롭힘.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직장 괴롭힘’에 따라 발생하는 연간 손실비용이 4조7000억원에 달했다.상사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과 함께 회사 전체를 망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따돌림과 폭행,험담 등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직장인 10.6%가 자살을 결심했을 정도라니 ‘직장갑질’의 심각성을 유추할 수 있다.그러나 이를 제어하거나 처벌할 법적장치는 사실상 없다.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검찰은 최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을 기소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포함시키지 못했다.마늘과 겨자 강제로 먹이기,음식물 억지로 먹이기,500cc생맥주 원샷과 흡연 강요,머리 강제 염색 등의 혐의가 밝혀졌으나 현행법상 처벌근거가 없었던 것이다.법 개정이 늦춰지면서 정부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매뉴얼’도 사문화 될 처지.국회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직장갑질과 꼰대 짓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연말,누군가의 가슴에 피멍이 들지도 모르는데.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