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중국 역사가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어느 날 길 가던 나그네가 굴뚝이 반듯하게 뚫려있고 주변에 땔나무가 쌓여있는 것을 목격한다.불길이 지나가는 자리에 땔감이 가득하니 누가 봐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나그네는 주인을 찾아 굴뚝 방향을 돌리고 땔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미구에 닥칠 화재를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나그네의 말을 듣지 않았고 기어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화마가 그 집을 덮친다.이웃사람들이 달려와 다행히 큰 불길을 잡았고 인명피해도 없었다고 한다.동네사람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초동 진화에 힘을 보탠 덕을 봤던 것이다.불행 중 다행이란 것이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집 주인은 불을 끄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웃을 초청해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사람이 집주인을 향해 말한다.“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불이 날일도,잔치를 벌일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굴뚝 방향을 틀고 땔나무를 옮기라고 한 나그네의 공은 없고,일이 터진 뒤 불을 끈 사람은 상객 대접 받는다(曲突徙薪無恩澤 焦頭爛額爲上客耶)”며 일침을 놓았다.재난을 막을 예방책에는 귀 기울이지 않다가 뒤늦게 불을 끈 사람만 포상하는 어리석은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엊그제 강릉에서는 수능시험을 마치고 현장 체험학습을 왔던 고교생 10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는 참변이 일어났다.의식을 잃었던 7명 중 어제까지 2명이 깨어났다고 한다.나머지 5명도 하루속히 회복돼 애끓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왜 이런 후진적 사고가 반복되는지 모르겠다.경찰과 당국의 조사결과 일단 보일러실 가스누출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보인다고 한다.

보일러 배관 연결이 불량하고 가스누출경보기도 없었다고 한다.사고가 나자 유은혜 부총리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대거 현장을 찾고 70명이 넘는 매머드 급 수사본부가 꾸려졌다.그러나 그 어떤 대책과 특단의 조치로도 사태를 되돌릴 수는 없다.드러나지 않지만 작은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게 재난을 막는 길이다.과시와 실적주의에 빠진 정치와 행정이 안전 사각지대를 만드는 건 아닌가.이게 달라져야 한다.

김상수 논설실장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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