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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남수 칼럼] 평창사람들을 화나게 한 진짜 이유

천남수 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 천남수 강원사회조사 연구소장
▲ 천남수 강원사회조사 연구소장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이 있던 대관령면의 원래 지명은 도암면이다.오늘날 올림픽 중심지로서 명성을 얻은 대관령면이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첫 도전에 나섰던 2010년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밴쿠버에 역전패 한 평창군은 절치부심하며 두번째 도전에 나선 2005년 ‘대관령면’으로 개칭을 추진한다.행정명인 도암면 보다는 대관령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지역의 상징성을 지닌 대관령면으로 불리게 되면 동계올림픽 유치와 지역 인지도 상승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그러나 대관령면으로의 개칭은 강릉지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고 만다.당시 강릉시의회를 비롯 기관·단체들은 “대관령은 강릉시와 평창군의 접경지로 특정 자치단체가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며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그리고 2년간에 걸친 지리한 논란 끝에 2007년 9월에야 비로소 ‘대관령면’이란 현판을 내걸 수 있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이후에도 강릉과 평창지역 주민간의 갈등은 이어졌다.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 지역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올림픽 개·폐회식장 유치를 놓고 대립한 것이 대표적이다.또 강릉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기있는 빙상종목 등이 치러지는 것을 비롯해 올림픽 관련 다양한 문화행사와 숙박 등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강릉올림픽’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이 적지 않았다.그래서인지 올림픽 기간 중 강릉에는 ‘평창올림픽’은 없고 ‘올림픽 빙상종목 개최지 강릉’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평창은 평창대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올림픽의 관심은 온통 빙상종목이 열리는 강릉에 집중됐다.북한공연을 비롯해 각종 올림픽 문화행사도 강릉에서 주로 열렸다.특히 서울-강릉간 KTX 개통 효과도 종착역인 강릉역에 비해 평창역이나 진부역이 크지 않았다.알맹이는 강릉에 뺏기고 평창은 껍데기만 남게 됐다는 탄식이 나오기 시작했다.실제로 올림픽 기간 중 경기 관계자와 국내외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던 대관령면 거리는 올림픽이 끝난 후 개·폐회식장이 철거와 함께 황량한 벌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2018평창동계올림픽은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튼 역사적 사건이었다.평창사람들은 엄동설한의 혹한을 감내하면서도 자발적으로 IOC실사단을 맞는 등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올림픽을 유치한 평창주민들이 개최지 주민으로서의 자존감이 남다른 이유다.하지만 화려한 올림픽의 순간이 지나가자 마자 평창사람들의 자존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깊은 무력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올림픽 이후’가 없었던 것이다.이는 박탈감과 배신감을 불러왔다.지난 13일 평창올림픽 1주년 기념행사가 평창이 아닌 강릉에서 개최되는 것에 항의해 도청광장을 가득 메운 평창사람들의 열기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오늘 수 천명이 달려온 것은 개최지 주민으로서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이날 항의 집회장에서 만난 평창주민 남 모(57)씨의 탄식은 평창사람들의 절박감이 묻어있다.

이제 ‘올림픽 이후’를 보장받지 못한 평창사람들의 분노는 정부와 강원도를 향해 있다.20년에 걸친 올림픽 도전과 성공의 역사를 이룩한 평창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또한 평창올림픽의 유산을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가꾸고자 했던 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2018년은 저물어가고 있지만,남북평화의 결정적 장면을 연출하면서 평화의 합창이 울려퍼졌던 대관령면 개·폐회식장은 성화대만 덩그러니 남긴채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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