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병로 논설위원
▲ 강병로 논설위원
보편적 복지정책의 후폭풍이 무섭다.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2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뜻밖의 발언을 했다.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이 보낸 ‘복지비 부담으로 지자체 재정이 파탄 위기’라는 내용의 편지를 소개하며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라고 밝힌 것이다.이어 “이 부분에 대한 제도 개선을 하고,함께 논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정 구청장의 편지가 대통령을 움직인 것이다.정 구청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지난 8일 청와대가 마련한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초청 간담회에서 “재정여건이 열악한 기초지자체에 대해서는 국비를 기초수급자 생계급여 수준인 90%로 상향 조정해달라”고 또다시 주문했다.전국 지자체가 기초연금을 비롯한 복지비 지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였다.임시조치로는 재정파탄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그렇지만 지자체 곳간은 파탄 직전이다.‘요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라고 물었다간 뺨 맞기 십상.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지자체가 비슷한 처지다.경기 지표 곳곳에 빨간불이 켜지고,경기 하강을 걱정하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지만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기초연금을 비롯한 복지 예산에 발목이 잡혀 경기부양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현 정부 들어 복지예산은 2017년 11.7%,2018년 11.3% 등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를 기록했다.과거 10년 간 매년 7∼8% 수준이었던 증가폭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해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 돈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마주치면 상황은 달라진다.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자체가 기초연금 지급에 쓴 돈은 전년(2017년)보다 2495억원이나 증가했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담 비율은 77:23.중앙정부의 부담률이 크다고 하지만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자체 입장에선 보통 일이 아니다.과다한 복지비용에 따른 재정압박이 갈수록 심해진다.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지방정부의 곳간이 거덜 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복지정책이 확충되면 될수록 지자체의 재정부담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난다.더욱이 올해는 기초노령연금이 인상되고 아동수당이 신설된다.예산이 투입되는 전체 복지항목만 50여개.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안전망 구축 차원에서 복지를 늘려야 하지만 재정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현재의 고령화 속도로 볼 때 2040년쯤 한국의 복지지출 비중은 세계 1위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지자체 입장에서는 재앙이나 다름없다.재정을 거덜 내지 않을 묘수가 필요하다.저소득층 보육 등 보편적 복지비용을 국고로 전환하는 등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된다.현재 8대2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대4까지 끌어올리는 등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 확보방안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주민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국가사무를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발표했다.정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었다.이 계획에는 6대 추진전략과 33개과제가 담겼다.그러나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는 “지방정부 의견을 제재로 반영하지 않았다”며 “누구를 위한 계획이며 진정으로 자치분권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자치분권의 핵심인 재정분권이 구체화되지 않은데 따른 불만의 표시였다.정부가 현재 8대2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대 3을 거쳐,장기적으로 6대 4까지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원론적 수준에 그친 것이다.

대통령이 ‘제2의 부산 북구청장 편지’를 받지 않으려면 소득세와 소비세를 중심으로 지방세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지난 2008부터 2017년까지의 예산 증가율은 중앙정부 6.6%,지자체 5.0%였다.하지만 복지 예산 증가율은 중앙정부 7.5%,지자체 9.3%로 지방 부담이 훨씬 크다.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분권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재정분권 없는 자치분권은 실효적 가치를 떨어뜨린다.정부는 국세의 지방세 이양 등 재정분권을 통해 지방정부의 자치능력을 높여야 한다.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brka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