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창수 소설가
▲ 하창수 소설가
법학은 법이 어떻게 정의를 실현해내는지를 배우는 학문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길지는 않았지만 경영학 전공자였음에도 필자가 한동안 사법고시에 몰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여기에는,우습지만,한 편의 드라마가 영향을 끼쳤다.1970~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를 기억할 것이다.미국에서 무려 59부작으로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된 이 드라마의 원작은 존 오스본이라는 실제 하버드대 로스쿨 재학생이 쓴 ‘토끼사냥놀이(Paper Chase)’라는 소설이었다.토끼사냥놀이는 토끼가 된 술래가 종이를 뿌리며 도망을 치고 그 종이를 추적해 잡아내는 일종의 술래잡기로,학위를 따기 위해 기울인 로스쿨 학생들의 지난한 노력을 상징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하버드대 로스쿨’과 당시 한국의 ‘법대’는 달라도 한참이나 달랐다.미국의 로스쿨은 법률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법률가로서의 지식과 철학,심지어 인성까지 기르는 문자 그대로의 전당(殿堂)이었다.그러나 이런 식의 로스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은 열심히 해서 사법고시에만 합격하면 재학 중에도 법률가가 될 수 있었다.상황이 이러니 ‘법’을 ‘공부’하는 데 있어 두 나라는 매우 이질적이었다.30년 동안 하버드 법대를 지키며 최근의 판례까지 들고 꿰는,학생들 사이에선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던 드라마 속 킹스필드 교수는 이런 이질적 조건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강의를 듣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을 흘리게 만드는 킹스필드 교수 과목에서 A학점을 받는 것과 한국에서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어려울까를 두고,참 쓸데없긴 했지만,매우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율사(律士)가 되기 위한 한 가지 조건만은 두 나라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었다.머리가 좋건 나쁘건 일단 ‘공부벌레’여야 한다는 것-책을 파먹는 벌레가 되지 않는 한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법률가가 되는 건 불가능했다.네 시간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사당오락(四當五落)에서 한 시간을 줄인 삼당사락(三當四落)의 신공,의자에 하도 오래 앉아 있어 엉덩이가 짓무르다 딱지가 앉고 마침내 감각이 사라지는 경지,외어지지 않는 부분은 찢어서 씹어 먹는 엽기-공부벌레가 처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고시공부를 하다 정신이 어찌어찌 돼서 골방에 처박힌 채 두문불출하거나 신발도 신지 않고 거리를 헤맨다는 불운한 고시생 얘기가 심심찮게 떠돌던 시절,‘서울대 법대’는 사법고시에 관한 한 그야말로 ‘성공의 지름길’이었다.재학중이냐 졸업후냐만 문제될 뿐,서울대 법대는 그 자체로 곧 고시합격을 의미했다.그 위상은 이즈음 장안의 화제를 불러 모은 ‘스카이 캐슬’에 등장한 ‘서울대 의대’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공부만 잘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인격적 파탄’이라 할 만한 비인간성이 지뢰처럼 숨어 있었다.악랄한 고문으로 애꿎은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해 목숨까지 탈취한 저 유명한 공안검사 K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 사법고시를 패스한 ‘공부벌레’였다.훗날 그는 중정부장과 법무부장관을 거쳐 마침내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그는 분명 ‘서울대 법대’의 추악한 유산이었지만,권력의 시녀가 되어 일신의 안위를 보장받은 수많은 ‘서울대 법대’ 출신자들에겐 유능과 출세의 전범(典範)이었다.

그 25년 뒤,역시 서울대 법대 재학 중에 사법시험을 패스한 또 다른 ‘공부벌레’ K는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보수당 국회의원이 되어 ‘세월호’를 인양하지 말자거나 국회 안에 대한민국의 적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다 이제 5.18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고 참여한 열사들을 폄훼하는 발언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그의 훗날이 어떨지 궁금하다.법학은 법의 정의를 어떻게 실현해내는지를 배우는 학문이지만,법의 정의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동시에 알게 해주는 학문이기도 하다.세상에 이로운 벌레와 해로운 벌레가 있듯,그가 만약 세상을 해롭게 만드는 ‘공부벌레’라면 분명 후자의 법학에 더 충실한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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