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한국기자협회 방문단 일원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다.한국과 베트남 언론인이 우의를 다지고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베트남은 우리나라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다.여러 인연이 씨줄날줄로 엮여져 외면하고 살 수 없는 나라다.당시 베트남은 그들 방식의 개혁·개방을 뜻하는 ‘도이머이’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정치는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좀 더 유연한 스탠스를 갖기 시작했다.

도이머이는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내건 슬로건으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였다.중국이 한 발 앞서 걸어간 길이기도 하다.현대 중국의 기틀을 잡아 놓은 덩샤요핑(鄧小平)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노선의 물꼬를 텄다.이른바 흑표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이런 발상과 접근법이 오늘날 미국과 양웅(兩雄)체제를 가능하게 한 추동력일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등소평은 그 어려움을 “창문을 열어젖히면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지만 해충(害蟲)이 함께 날아든다”는 말로 표현했다.이 말을 당시 베트남 기자협회의 고위간부는 막 개방의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그들의 현실에 그대로 인용하고 있었다.중국도 베트남도 해충이 날아드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고 두 나라 모두 지금 새로운 발전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두 나라의 선택은 곧 우리의 문제로 연결된다.중국의 개혁·개방은 우리나라에게 거대 시장을 제공하고 동북아의 경제 틀을 바꿔 놓았다.베트남 또한 다르지 않다.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완충지대 역할까지 하는 정치적·경제적 ‘특구’같은 곳이다.우리나라와는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동족 전쟁을 치른 아픈 경험을 공유한다.남북한은 베트남 전쟁 때 남북 베트남 진영에 각각 참전,대리전을 치른 아픈 과거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와는 그 복잡한 과거를 딛고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팀을 이끌면서 축구 한류 바람이 거세다.오늘과 내일(27,28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을 갖는다.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회동의 장소가 베트남이라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이 회담이 성과를 내고 한국·베트남 사이에 또 하나 좋은 인연이 추가되길 바란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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