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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6·25한국전쟁과 근현대사] <4>끝없는 피란민 행렬

인민군 점령에 속수무책, 대포·총탄에 쫓겨 절체절명
전쟁 반발 3일만에 서울 함락
국군 대항 못하고 후퇴 급급
그해 7월 말 남한 90% 뺏겨
아비규환 속 황급히 피란길
남하 저지 당하자 산속 노숙
당시 노근리 양민학살 발생

박도 . 2019년 03월 02일 토요일
[사진 왼쪽] 1·4 후퇴 피란민 행렬로 피란봇짐을 이고 진 사람들과 우마차들이 서울 근교 일대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1951.1.5.) [사진 오른쪽]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화천에서 아이를 업고 머리에 가재도구를 잔뜩 머리에 인 고단한 피란민 행렬에 유엔군 병사가 잠든 아이를 안고 동행해 주고 있다(날짜 미상)  사진출처=NARA
[사진 왼쪽] 1·4 후퇴 피란민 행렬로 피란봇짐을 이고 진 사람들과 우마차들이 서울 근교 일대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1951.1.5.) [사진 오른쪽]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화천에서 아이를 업고 머리에 가재도구를 잔뜩 머리에 인 고단한 피란민 행렬에 유엔군 병사가 잠든 아이를 안고 동행해 주고 있다(날짜 미상) 사진출처=NARA

#순식간에 남한 전역 점령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은 다섯 시간 만에 개성을,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그런데 서울에서는 사흘이나 머물렀다.그들이 금쪽같은 사흘을 서울에서 머문 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국군의 한강다리 폭파 때문이라는 설도,애초부터 서울만 점령하려 했다는 제한전쟁 설도,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면 남한에서 일제히 봉기가 일어날 것으로 판단했다는 설도 있다.즉 인민군이 38선을 돌파하기만 하면 남한 전역에서 남로당 주축으로 인민군을 환영하는 봉기가 순식간에 일어나리라고 북한 지도부는 판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중대한 판단 착오로 남한에서는 전쟁 이전에 그런 싹으로 여긴 좌익사범들을 전국 곳곳에서 무참하게 처형해 버렸다.그래서 인민군들이 남침했어도 대대적인 민중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인민군은 7월 3일 한강 도하작전을 감행하여 그날로 수원과 인천도 점령했다.한편 국군은 전 지역에서 인민군의 소련제 탱크에 속수무책으로 제대로 대항도 못한 채 후퇴하기 급급했다.1950년 7월 20일,호남과 영남으로 갈리는 교통의 요충도시 대전조차도 인민군에게 맥없이 빼앗겼다.그해 7월 말에 이르자 인민군은 대구와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일대만 조금 남겨두고,남한 지역의 약 90퍼센트를 점령했다


#낙동강까지 밀리다

대한민국 정부는 개전 초부터 백성들에게 전황을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고,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고관들은 자기들만 몰래 도망 다니기 바빴다.그러다 보니 일반 백성들의 피란 행렬은 인민군의 진주 직전이거나,아니면 인민군이 진주한 다음에야 매우 화급하게 쫓기듯 살던 집을 뛰쳐나오곤 했다.

한국전쟁 당시 나는 여섯 살 소년으로 그때 기억들이 아직도 뚜렷하다.그때 우리 가족은 구미면(현 구미시) 원평동 오거리 장터 마을에서 살았다.7월 하순 어느 날 갑자기 북으로부터 피란민의 행렬이 꾸역꾸역 쏟아져 내려왔다.구미 북쪽인 김천 쪽에서 ‘쿵쿵’ 쏘아대는 인민군의 대포소리,‘따다다’ 다발총 소리,탱크의 캐더필러 구르는 소리에 공포감에 질렸다.그런데다가 매캐한 화약 냄새를 맡으면서 허겁지겁 우리 가족은 피란봇짐을 쌌다.

하지만 남쪽으로 가는 모든 열차는 끊어진데다가,신작로조차도 피란민과 우마차로 가득 찼다.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 아비규환의 피란대열을 헤치면서 피란봇짐을 지고 낙동강까지 내려갔으나 이미 그곳에는 인민군들이 진주하고 있었다.

“샹! 인민들,어서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우!”

따발총을 든 인민군들의 위협과 고함에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남하치 못하고 뙤약볕 속에 갔던 길을 돌아왔다.우리 가족은 그 길로 금오산 골짜기로 갔다.거기 개울가에서 한동안 노숙생활을 했다.그때까지 산에는 늑대들이 살았다.밤이면 늑대들이 사람냄새를 맡고 설쳤다.그러자 어른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빙 둘러 앉아 아이들을 지켰다.그 무렵 충북 영동에서는 피란민 500여 명이 피란 도중 노근리 기찻길 아래에서 유엔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절반 이상이 죽었다.후일 그들은 피란민을 인민군으로 오인했다는 변명이었다.6·25전쟁 때 피란민들은 인민군,유엔군 산짐승에게 쫓기면서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 박도
▲ 박도

저자 박도(朴鍍)는 1945년 경북 구미 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30여년간 교단에 섰다.현재 원주 치악산 밑에서 글 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작품집은 장편소설 ‘약속’‘허형식 장군’ ‘용서’등이 있고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항일유적답사기’‘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영웅 안중근’등을 펴냈다.이 밖에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전쟁100 장면’‘일제강점기’‘미군정 3년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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