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핀 ‘명동백작’ 시 세계 인제서 만난다
1926년 상동리 출생,서울 활동
문학관 1950년대 명동 재현
건물 주변 상반신 동상·시비
‘시인 박인환 거리’도 조성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시 ‘목마와 숙녀’는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박인환의 대표작이다.박인환은 195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이다.인제가 낳은 대표적인 근대 문학가로 기존 시의 전통을 잇기보다 새로운 시 언어를 찾는 데 몰두했다.30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한국의 시 역사에 남긴 영향은 크다.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인제군 인제면(현 인제읍) 상동리에서 태어났다.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 후 면사무소에 다니던 부친이 아들 교육을 위해 서울로 생활터전을 옮긴 후 박인환은 경기공립중학교로 진학하는데 이 무렵 영화와 문학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돼 중퇴 후 한성학교 야간부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한다.부친의 강요로 3년제 관립학교인 평양의전에 진학하지만 해방이 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내려와 본격적인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시인의 고향인 인제에는 박인환문학관이 세워져 지역의 젊은 문학동아리와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인제군은 지역 출신 박인환을 기리기 위해 2012년 10월 시인의 생가 터에 문학관을 개관했다.문학관 내부는 시인의 문학세계의 배경이 된 1950년대 명동,종로거리로 꾸며졌다.6·25전쟁 직후 서울 명동은 상처 입은 예술인들의 피난처였다.박인환이 직접 운영한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아지트인 ‘마리서사’를 비롯해 ‘유명옥’,‘모나리자’,’동방싸롱’,‘봉선화다방’ 등 문학·예술인들의 희로애락이 묻어있는 선술집과 다방의 옛 모습이 재연돼 ‘명동백작’ 박인환과 함께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문학관 건물 주변은 ‘시인 박인환의 거리’로 조성,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됐다.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시인의 품’ 동상이다.박인환이 코트를 입고 바람을 맞으며 시상을 떠올리는 모습의 상반신 동상으로 코트 안으로 들어가 앉으면 센서에 의해 시인의 대표 노래와 시를 들을 수 있다.박인환시비는 해방과 전쟁의 암울한 시기 시인이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대와 사랑을 이야기 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시인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에서 목마 이미지를 모티브로 만든 ‘책읽는목마’는 야외에 조성된 작은도서관으로서 아이들이 책과 함께 잠시 쉬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박인환은 불과 3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그는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인 ‘박인환 선시집’을 발간한 후 이듬해인 1956년 3월 20일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지인들은 박인환이 좋아했던 조니워커와 카멜담배를 그의 시신과 함께 묻었다. 최원명 wonmc@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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