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현종 때 양국충(楊國忠)이라는 승상이 있었는데,시인 이백(李白)을 시기한 나머지 망신을 주기로 작정했다.어느 날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 “두 원숭이가 산에서 나무를 베고 있네.묻노니,원숭이가 어떻게 톱을 켜는가?”라는 말을 건네면서 3보(步) 안에 대구(對句)를 짓게 했다.단단히 조롱하겠다는 심사였다.문미(文尾)의 ‘톱을 켠다’는 뜻의 대거(對鋸)는 ‘아귀를 맞춘다’는 의미의 대구(對句)와 같은 발음이다.

조조(曹操)의 장남 조비(曹丕)가 동생 조식(曹植)을 질투한 나머지 일곱 걸음 안에 즉흥시를 짓게 한 것을 뺨치는 수준이다.“콩을 삶는데 콩깍지로 태우니(煮豆然豆器)/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豆在釜中泣)/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本是同根生)/서로 삶기를 어찌 이리 급하게 구는가(相煎何太急)”10살에 불과한 조식은 칠보시(七步詩)를 내놓아 위기를 넘기게 되는데 그의 문재(文才)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조식이 그랬던 것처럼 이백이 거기서 무너졌으면 시선(詩仙)의 칭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두 걸음 이내에 대구를 짓겠다며 한술 더 떠 양국충의 발을 보며 답했다.“말 한필이 흙탕물에 빠졌네,짐승이 어떻게 출제할까요?”‘발을 뺀다’는 의미의 출제(出蹄)는 ‘문제를 낸다’는 뜻의 출제(出題)와 역시 발음이 같다.양국충은 이백을 원숭이에 빗대 모욕을 주려다,오히려 짐승으로 비유되는 되치기를 당했던 것이다.

중국 삼국시대 이런 이야기도 전한다.강동의 손권(孫權)이 잔치 중 얼굴이 긴 자유(子瑜) 제갈근(諸葛瑾)을 희롱,노새를 끌어오게 하여 머리에 ‘제갈자유(諸葛子瑜)’라는 이름표를 달게 했다.이때 아들 제갈각(諸葛恪)이 기지를 발휘 아비를 구했다.그는 손권에게 두 글자를 첨가하겠다고 청하여 ‘제갈자유지려(諸葛子瑜之驢)’로 명찰을 고쳤다.자유를 모욕했던 노새는 ‘지려(之驢)’가 붙자 그의 소유가 됐던 것이다.

지난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모독과 국민 명예훼손이라며 국회윤리특위에 제소했고 자유한국당도 대표 연설을 방해했다며 맞제소 했다.한쪽은 막말로 국회의 품격을 떨어뜨렸고,한쪽은 잠시 모욕을 못 참는 협량을 보였다.다시 정치가 실종되고 국민이 피박을 쓰게 됐다.옛사람의 기지가 그립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