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미 현 <부국장 겸 문화체육부장>

 평소에 늘 되풀이해 익숙해져서 잘하는 것을 '관행'이라고 한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그 뒤를 이어 신부가 입장하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관행이어서 신랑신부가 함께 입장한다거나 하면 신문의 뉴스거리가 된다.
 차려놓은 밥상에 앉는 데 익숙했던 우리 문화에 셀프서비스라는 식문화가 막 퍼질 무렵인 1990년 초 행정기관의 구내식당에서는 여직원이 간부공무원의 식판을 대신 들고 밥을 타 밥상을 차려주는 작은 관행이 계속된 적이 있다.
 대통령은 엄숙한 풍모에 국민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권위적인 냄새를 풍겨야한다는 관행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요즘 대통령의 스타일을 두고 말이 많다느니 하며 괜히 시비를 건다.
 얼마전 자민련 총재 김종필씨의 일본 유사법제 옹호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김종필씨는 지난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그 많은 우리 속담이나 고사를 두고 '낮의 촛불과 같다'며 일본 속담을 빗대 기대감을 표시했었다. 김종필씨의 평소 언어 관행이 낳은 결과로 수치감을 줬다. 
 인·허가와 예산을 주로 다루는 행정기관이야말로 관행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70~80년대를 거친 공무원들로부터 '출장 성상납'관행에 대해 호들갑떨며 자랑하는 일화를 군대 이야기만큼 자주 들었다. 또 '지침'이 없이는, '지난해'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버티질 못한다는 관행에 대해서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불필요하다.
 '지침이 생명줄'이라는 오랜 관행과 함께 키워온 '때에 따른 융통성'은 안면 행정, 촌지 관행이라는 독소를 우리 사회에 널리 널리 퍼뜨렸다.
 형사 사법계에서의 관행이라 붙여도 어울릴 만큼 익숙해진 '폭탄주 관행'. 회식자리에서의 술 마시는 스타일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관행이 재생산해내는 조직 문화, 정신문화, 비전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사회 다른 분야에서는 걷어치우고 없어지고 있는 폭탄주관행이 어느 집단에서는 고수되고 있는 점은 씹어볼만 하지 않은가.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이나 국회의원 류시민씨 등을 두고 입에 오르내렸던 진실 없는 '넥타이논쟁' '정장논쟁'역시 한꺼풀을 들춰보면 관행이 깨지는 것에 대한 기득권층의 두려움과 치사함이 숨겨있다. 
 무의식적으로 통용되는 사회 각 분야의 감춰진 갖가지 관행은 참으로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관행은 공공성이라는 성질을 갖고 있어 그 관행을 붙잡지 않으면 불안하기도 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관행 옹호론자는 없다. 우리 속담에 '고인 물은 썩는다'는 그 무궁한 진리와 독일의 21세기 여성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발언한 '관행처럼 무서운 죄악은 없다'는 일맥상통한다.
 한나 아렌트는 관행 대신 가져야 할 실천덕목으로 '참여와 용기'를 지적했다. 조직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자기 개혁과 혁신을 해야만 영원할 수 있다.
 그리고 '천하흥망 필부유책'이라는 고사를 들지 않더라도 지역사회, 국가가 흔들리면 가장 비참함을 겪는 층이 필부이다. 그래서 필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도하지 못하는' 지도층에 등 돌리는 방관이 아니라 참여와 용기의 자세다.
 그 덕목은 현대사회에서 자발적인 시민운동으로 표현된다. 지역마다 '건설예산 잘쓰는 감시 모임' '시장·군수 일과 모니터' '어린이 놀이터 안전 모임' '춘천 사우동을 가꾸는 모임' '주문진항 사랑 모임' 등이 속속 탄생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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