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2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는 분위기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결렬된 후 북미 간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에 부심하던 문 대통령이 또 한번 큰 고비를 맞게 된 탓이다.

연락사무소에서 북한이 철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여는 등 긴박하게 돌아갔다.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접점을 찾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되살리고자 한 문 대통령에게 북한의 이번 조치는 적잖은 타격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부담스러운 대목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사실상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며 처음으로 구체적 조치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포스트 하노이’ 국면에서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내세우며 단계적 비핵화 수용을 요구해 온 북한은 지난 15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을 압박한 바 있다.

최 부상은 평양에서 연 긴급 회견에서 “미국의 요구에 양보할 의사가 없다”면서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중단 고려까지 시사한 최 부상의 회견 내용에 청와대는 즉각적 판단을 자제한 채 무엇보다 북미 간 기 싸움이 긴 냉각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데 공을 들였다.

교착 상태가 장기화해 협상 동력이 약해진다면 문 대통령이 여태껏 끌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역류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현 상황의 장기화가 비핵화 국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떤 형태로든 북측과의 접촉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대북 특사 파견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동시에 지난해 5월 26일 2차 남북정상회담처럼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연락사무소 인력 일방 철수가 문 대통령이 운신할 폭을 더욱 좁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온다.

북미 간 갈등이 현 상황을 야기한 핵심 요인이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이 마땅한 역할을 찾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중재·촉진 행보가 더욱 신중하고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청와대가 북한의 연락사무소 인력 철수에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은 것 역시 향후 행보에 매우 조심스럽게 임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당장 눈에 띄는 구체적 행동에 나서기보다는 북한의 진의를 헤아리는 데 일단 주력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이 연락사무소 인력 철수를 통보하면서 남측 인력의 사무소 철수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은 여건이 조성된다면 다시금 비핵화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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