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 강원사회조사연구소장

▲ 천남수 강원사회조사연구소장
▲ 천남수 강원사회조사연구소장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진박(진짜 친박)논란’이 있었다.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내에서는 너도나도 친박이라고 했던 터라 누가 진짜 친박인지가 관심사였다.덕분에 원박(원래 친박),범박(범친박계),멀박(멀어진 친박),짤박(짤린 친박) 등 신종 친박들이 탄생하기도 했다.나아가 누가 친박인지 판정하는 이른바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지만,TK 등 일부지역에서는 새누리당의 공천여부가 국회의원 당선과 직결됐다.그러나 국민은 선거를 통해 친박논란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21대 총선을 1년 여 앞둔 요즘 여·야간 공방이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국민들 입장에서는 매우 피곤한 일이지만,결과적으로 각 정당간의 치열한 공방은 결국 국민들 입장에서 지지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일종의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다.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각 정당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상대당의 문제점을 더욱 강하게 지적한다.정당간 공방이 첨예해질수록 국민은 이를 근거로 지지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활용한다.각 정당이 서로 다른 정책을 놓고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게 되면 국민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이나 이념에 부합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당간 공방은 참으로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보수를 지향한다는 정당은 진보적 정당을 향해 좌파독재,종북정당으로 몰아가고,국회 야당대표 연설에서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공격한다.이런 류의 공격은 일견 지지층에게는 속시원한 사이다 발언일 수는 있다.하지만 사회적 가치에 우선하기 보다는 정략적 목적의 무분별한 대립을 낳기도 한다.극우정당,친일정당 등 진보를 지향한다는 정당들의 보수적 정당을 향한 극우 낙인찍기도 큰 차이가 없다.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는 정치권의 프레임 전쟁이라는 얘기다.

유권자들에게 명료하게 피아(彼我)간 구분을 짓게 하는 정치권의 프레임 전쟁은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 공격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반증이다.이는 정치적 반대자를 향해 무차별 테러를 가했던 해방후 좌우대립의 역사에서 비롯됐다.해방후 좌우의 극한 대립은 결국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불러왔고,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강요 당했다.지금도 정치적 대립이 이념투쟁으로 비쳐지고 이는 곧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극한 대립이 이어지는 악순환은 이러한 역사적 상처에 기인한바 적지 않다.

21세기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이를 예견한 듯 1960년대 초 다니엘 벨(Daniel Bell)은 ‘이념의 종언’을 고하기도 했다.세계는 이미 시장경제 이론이 주류를 이룬지 오래다.이런 세계사적 흐름속에서 우리는 굳이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아직도 성장을 강조하면 보수정책이고,분배를 우선하면 진보라고 주장한다.또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 보수가 되고,자주외교를 주장하면 모두 진보가 된다.그야말로 기계적인 이분법이다.다원화된 사회적 환경과 변화무쌍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무시하는 정략적 선긋기에 불과한 퇴행적 정치행태의 다름 아니다.

20대 총선에서의 ‘진박 논란’은 그나마 국민들에게 쓴웃음이라도 선사했지만,오늘날 정치권의 묻지마식 낙인찍기를 통한 진보 보수의 편가르기는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무관심을 불러온다.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 줄세우기를 강요하는 진보도,보수도 ‘진짜’가 없는 시대다.

chonns@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