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음식은 두부·오이·생강·나물(大烹豆腐瓜薑菜)이고,최고의 모임은 부부·아들 딸·손주와의 만남(高會夫妻兒女孫)이다.이것이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비록 허리춤에 말(斗) 만한 큰 황금인장을 차고 호화로운 밥상 앞에 시중드는 여인이 수백 명이 있더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이 글은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해에 쓴 마지막 예서체 작품으로 알려졌다.최고의 경지에 오른 추사체를 보여주고 있지만 글 내용이 더 눈길을 끈다.

추사는 왕실 외가의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24살 때 동지사인 아버지를 따라 연경에 머물면서 청나라 최고의 학자인 완원과 옹방강 등으로부터 인정받아 평생 스승으로 삼았다.과거급제로 형조참판 등을 거치며 수많은 명사들과 교류하면서 진귀한 음식을 먹고 풍류를 즐겼다.

제주 유배지에서 부인이 보내준 음식이 상했다며 민어·어란 등을 다시 보내 달라고 했고,김치가 변했다고 타박까지 했다.이를 두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대갓집 양반의 호사를 엿볼 수 있다”라고 했다.요즘 말로 금수저로 태어났고 능력까지 있으니 부러울 것이 없어 성격은 오만할 정도로 자신만만했고 까다로웠다.

이런 그가 인생 말년에 아무리 좋은 대접을 받아도 집에서 먹는 음식이 가장 좋고 대단한 사람들과 있어도 가족이 최고라니,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대단한 변화다.그러나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10대 때 조부,양부,모친,스승에 이어 첫 번째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또 유배생활 중 두 번째 부인마저 죽자 크게 좌절한다.부인 2명과의 사이에 자식은 없고 서자와 양아들이 있었다.아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져 글씨와 그림을 가르쳤다.가족의 소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젊었을 때 바빴던 사람들이 말년에 가장 후회하는 것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최근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오늘(15일)은 가정의 날이다.가족은 세상을 살아가는 행복의 원천(家和萬事成)이다.

권재혁 논설위원 kwonj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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