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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6·25한국전쟁과 근현대사] <8>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작전

좌절된 크리스마스 꿈, 흥남부두 몰려든 피란민 ‘아비규환’
적군 거센 반격에 유엔군 철수
장진호 전투 기적적 퇴로 확보
보름간 수십만명 피란민 수송
피란길 못오른 이들 다수 희생

데스크 2019년 05월 18일 토요일
▲ 유엔군 수송선(LST)과 흥남부두에 피란민들로 가득차 있다.(1950.12.) 사진출처=NARA
▲ 유엔군 수송선(LST)과 흥남부두에 피란민들로 가득차 있다.(1950.12.) 사진출처=NARA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공격작전’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까지 후퇴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일대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뒤 전광석화처럼 북진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한국전쟁을 끝내고자 회심의 ‘크리스마스 공격작전’을 구상한 뒤 B-29 등 폭격기로 북한 지방 대부분을 초토화시켰다.그런 다음 맥아더는 1950년 11월 25일 유엔군 전 장병에게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적은 재기할 능력이 없으니 압록강까지 진격하라! 크리스마스에는 그대들은 가족과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격 명령에 따른 유엔군의 대공세는 기세 좋게 압록강까지 이르렀다.하지만 곧 중국군과 인민군의 거센 반격에 부딪혔다.특히 복병 중국군의 북과 꽹과리를 치고 나팔을 불며 불쑥불쑥 나타나는 고전적인 전술과 영하 30℃가 넘는 북부 산악지대의 강추위에 유엔군은 전의를 상실했다.

1950년 11월 말 무렵, 낭림산맥 동쪽 장진호 일대에는 미 해병1사단 1만 3500여 병력과 미 7사단 일부 병력이 중국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다행히 미 해병1사단 장병은 퇴로를 차단한 중국군과 건곤일척의 격렬한 전투를 치른 결과 20여 킬로미터의 포위망을 돌파해 마침내 기적과 같이 흥남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 유엔군 병사들이 흥남에서 철수한 후 묵호항에서 하선하고 있다.(1950.12.18)   사진출처=NARA
▲ 유엔군 병사들이 흥남에서 철수한 후 묵호항에서 하선하고 있다.(1950.12.18) 사진출처=NARA

#흥남 철수작전

흥남 지역으로 후퇴한 유엔군은 미 제1해병사단, 제7사단, 제3사단 그리고 국군 제1군단(예하 수도사단,3사단,해병 2·5대대)과 영국군 일부로 10만 5000여 명이었다.여기에 수십만 명의 북한 동포가 남으로 피란하고자 유엔군을 따라 나섰다.

원산항은 공산군 측이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군 철수는 흥남 항에서만 이뤄졌다. 사상 최대 흥남철수 작전은 1950년 12월 10일부터 24일까지 보름동안 전개됐다.이 작전에는 각종 함선 132척이 동원됐다. 행선지는 부산,마산,거제,울산,포항,울진,묵호 등이었다.사람은 많았지만 배는 적었다. 흥남철수작전 마지막 배는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아(Meredith Victory) 호였다.이 배는 제2차 대전 당시 장비를 실어 나르던 화물선이었다.

원래 이 상선은 흥남 항에 적재된 각종 무기를 실어 나를 예정이었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피란민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배에 실은 무기와 짐을 모두 내리고 피란민을 태웠다.최대 승선 인원은 2000명 정도였는데 무려 1만 4000여 명을 태웠다.그래도 부두에 몰려온 피란민을 모두 태울 수는 없었다. 그때 흥남부두는 아비규환이었다.

▲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들을 묵호항에 하역하고 있다.(1950.12.19) 사진출처=NARA
▲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들을 묵호항에 하역하고 있다.(1950.12.19) 사진출처=NARA

해군 LST(상륙함정)가 부두에 그물망을 내리면 피란민들은 서로 먼저 타려고 죽기 살기로 몰려들었다. 밟혀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그물에 매달려 기어오르다 떨어져 죽은 시체가 즐비했다.살을 에는 혹한 속에 주인 잃은 피란 보따리가 여기저기 뒹굴었다.

1950년 12월 24일 오후 2시 45분,마지막 수송선이 흥남부두를 떠났다.그러자 유엔군은 적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기 위해 흥남부두에 대규모 함포사격과 공중 폭격을 가해 그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그 틈에 부두에 남았던 피란민들도 함포 사격과 공중 폭격으로 상당수 희생됐다.

마지막 수송선 빅토리아호는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피란민을 태운 뒤 28시간 항해하여 부산항에 도착했다.하지만 이미 부산에는 피란민이 가득 차 있기에 다시 50마일을 더 항해한 뒤 거제도 장승포항에 닻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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