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장자(莊子)의 생사관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그의 아내가 죽자 혜시가 문상을 갔다가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배우자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어야 할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기 딱 좋은 장면을 보고 혜시가 평생의 반려자 아내가 죽었는데 곡을 하기는커녕 장단을 맞춰 노래까지 하는 것은 심하지 않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러자 장자는 왜 슬픔이 없었겠느냐며 곡을 멈추고 슬픔을 거둬들인 까닭을 이렇게 밝혔다.삶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본래 삶이란 없었다.그저 허공을 떠돌던 기(氣)가 모여서 형체를 만들고 그 형체가 삶을 갖추게 된 것에 불과하다.죽음이라는 것은 모였던 기가 흩어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생로병사가 춘하추동이 반복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렇게 통곡할 일이 뭐있느냐는 것이다.

어제(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이 경남 봉하마을에서 열렸다.2008년 5년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얼마 안 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비운의 대통령이다.주군의 비참한 최후를 지켜본 측근들은 스스로 폐족이라 부르며 한껏 몸을 낮췄다.그렇게 와신상담 끝에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에 당선되면서 실지(失地)를 되찾은 셈이 됐다.

노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 파트너였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직접 그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고인을 기렸다.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했다.그러나 정작 자리를 지켰어야할 유시민 노무현 재단이사장이 모친상을 당해 추모식에 불참했다고 한다.그의 부재 자체가 뉴스이기도 했으나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팬클럽 회원들에게 보낸 ‘어머니의 별세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해 죽음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그는 슬프거나 아프지 않다며 굳이 위로하러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다시는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어머니의 죽음이 애통하지 않다고도 했다.거부할 수 없는 것을 수용하는 방식이 다를 뿐,왜 슬픔이 없을까.그의 희망대로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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