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후손에 촛불되었으면…"
애국 선열 고귀한 희생정신 본받을 때 국가 존립
-이번 출판기념회를 갖게 된 계기는.
"강원대에서 회고록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고맙기는 했으나 내 인생에 뭐가 그렇게 남길 것이 있겠냐며 사양했다.되돌아보면 그동안 밥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국가와 민족을 위해 별로 한 일이 없는 것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에 피해는 주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국가를 위해, 후손을 위해 조그만 촛불이라도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회고록 출간에 응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강원대측에 대해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한다."
-회고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박용수 강원대 총장의 배려로 수필가인 이희수 선생이 몇달동안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회고록이 만들어졌다. 내 생애가 '축산농민' '큰 장사꾼' '늦은 학업과 장학사업' '필생의 애국선열 선양사업' 등으로 나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쓰여져 있다."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는 등 애국선열 선양사업에도 많은 관심과 정열을 쏟아부었는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시작했다. 고향인 홍천군에 조성되고 있는 동창마을사업은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돼 앞으로 2년동안 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고향에서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이 겪어 고향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으나 이번에 고향이 나를 알아준다는 것을 알고 보람을 느낀다."
-신문배달 소년에도 남보다 일찍 관심을 보였는데.
"지난 70년초부터 동아일보, 한국일보, 매일경제신문 등의 배달소년을 위해 격려차원에서 운동화를 전달했다.
당시 신문사가 영세한데다 배달소년에게 관심을 갖는 사회단체나 기업도 없었다. 처음에는 신발을 사주다가 나중에는 신발 1천500켤레를 살 수 있는 돈인 당시 100만원을 주었다.
운동화를 주면 무척이나 고마워했으며 당시 배달소년들은 지금도 운동화를 살 때 그때의 생각이 날 것이다.그후 강원도민일보 등 고향신문의 배달소년에게도 격려금을 지급해왔다. 옛날에는 배달소년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러 가면 사장까지 나와 인사를 했는데 요즘은 계원도 잘 안나온다.(웃음)"
-후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은.
"민족을 생각하고 나를 희생할 줄 알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어렵든 말든 내 이익만을 생각하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는 것이다."
서울/경민현 slkyung@kado. 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