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협동조합의 ‘대부’로 불리는 무위당(无爲堂) 장일순(1928∼1994)선생의 25주기를 기념하는 ‘생명협동문화제’가 지난달 16일부터 2주 간 원주시역사박물관 등에서 무위당 선생의 서화작품 전시회와 ‘무위당 길 걷기’,교육포럼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됐다.

추모제에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참석해 1975년 중앙정보부의 검거를 피해 원주에 와서 무위당의 도움으로 여섯달 동안 사과농장에서 일하던 추억을 얘기하기도 했다.손 대표는 이때 협동조합에 대해 배워 2011년 국회의원때 ‘협동조합기본법’을 발의했다고 한다.

원주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무위당은 중학교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가서 서울대 공대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미군정이 국립 서울대 초대 총장으로 미군 대령을 임명한다는 소식에 복학을 포기하고 정당활동을 했다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3년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고향사랑이 남달랐던 무위당은 군 제대 후 원주로 돌아와 공동체 정신에 기반한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도시와 농촌 모두를 위한 농산물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 운동’에 앞장서면서 생명사상운동을 실천했다.진보진영의 ‘정신적 스승’으로 온화하고 소탈한 성품과 심중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지닌 무위당은 천주교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와 의기투합해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 역할도 했다.그 덕분에 원주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가장 강력한 진원지였다.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잘 놀다간 자유인’으로 ‘20세기를 산 21세기 인간’으로 불리는 무위당에 대해 ‘장일순 평전’을 펴낸 김삼웅은 “시대를 내다보는 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의 앞길을 제시하고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초들과 함께했지만 나서기를 꺼리고 지도자인체 하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이때문에 소설가 김훈이 “하루도 안 빼놓고 악다구니,쌍소리,거짓말,쓸데없는 소리로 날을 지새운다”라고 비판한 요즘세상에 무위당의 생명운동이 더욱 절실해진다.

진종인 논설위원 whddls25@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