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기획취재를 위해 옛 동·서독 국경지대를 따라 베를린에서 뮌헨까지 종단한 적이 있다.이때 ‘철의 장막’으로 불리던 동·서독 국경지대를 ’녹색 생명띠’인 ‘그뤼네스반트’(Grunes Band·그린벨트)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던 독일 인사들을 만났다.이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몇년 내에 국경지대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각종 군사시설을 철거한 것에 대해 무척 후회하고 있었다.

동·서독 경계선이 20세기 ‘냉전의 유물’로 세계사적 의미가 큰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독일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각종 비정부기구·환경단체들은 1400㎞에 걸친 국경지대를 푸르게 조성하는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를 다양한 형태로 추진했다.

작센안할트주의 환경단체 ‘분트(BUND)’는 사업비의 75% 정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후원금으로 개인 소유의 땅을 매입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으며,바이에른-튀링겐주 지역에서는 자연·동물·조류보호협회 등 각종 환경단체와 환경전문학교 등 30여개 조직이 연합으로 그뤼네스반트 환경교육을 하고 국경지역의 숲 홍보에도 힘쓰고 있었다.특히 환경학자들이 국경지역에 머물면서 조류와 동식물의 분포 범위를 연구하고 보호방안을 찾는 것은 ‘금단의 땅’인 비무장지대(DMZ)만 본 필자에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독일이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제안됐다.노태우 정권에서는 DMZ내에 이산가족면회소와 민족문화관 등을 설치하는 ‘평화시 건설’이 제의됐고,김영삼 정권에서는 DMZ자연공원화가 논의됐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가진 남북정상회담에서 DMZ내 남북 소초와 중화기를 철수하고 평화적으로 이용하자고 제안했으며,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에서는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과 ‘DMZ세계평화공원 조성사업’이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이처럼 명칭은 달리했지만 정권이 바뀔때마다 DMZ를 활용하는 방안은 꾸준히 추진됐다.하지만 서로의 셈법이 다른 남북관계로 인해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독일 쾨르버재단에서 발표한 ‘신베를린 선언’때만 해도 꽉막힌 남북관계로 DMZ를 활용하는 방안의 실현 가능성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다.최고조의 긴장관계를 보이던 남북이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반전을 이루더니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회담으로 급진전하면서 GP 10곳 시범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한강하구 공동수로조사 등 DMZ를 활용한 여러 사업들이 가시적 성과를 냈다.지난 2월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로 후속 조치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북미 정상의 친서외교가 재가동되고 문 대통령의 물밑 중재가 진행되면서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정체기인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판문점 선언 1주년인 4월 27일 고성 ‘DMZ 평화의 길’을 처음 개방한데 이어 지난 6월 1일에는 철원지역에서 ‘DMZ 평화의 길’을 열었다.문 대통령이 이번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비무장지대는 곧 국민의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강원도민이 국민들 가운데 첫번째로 ‘비무장지대(DMZ)’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60년 넘게 분단비용을 감당하면서 지내온 접경지역을 진정한 ‘평화지역’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기에 선 만큼 전세계 유일의 분단도인 강원도는 ‘통일의 상징’으로 변신할 수 있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그런면에서 그뤼네스반트는 우리의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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