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냄새로 그어진 감출 수 없는 ‘선’에 대해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
포스터 속 가족들의 신발 유무
벗어나지 못할 가난의 증명 같아


늦은 감이 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여전히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의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국내외의 비평가들은 한결같이 훌륭하다, 탁월하다, 환상적이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등의 찬사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런 수식어는 ‘기생충’과 꽤나 잘 어울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지난 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코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원제목은 ‘좀도둑 가족’[万引き家族, Shoplifters])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기이한 유토피아. 그런 분위기는 ‘어느 가족’의 포스터에도 잘 드러난다. 반면 ‘기생충’은 피로 맺어진 끈끈한 가족들로 뭉쳐있다. 잘 나가는 박 사장과 예쁘고 심플한 연교, 두 아이가 제법 화목하게 지내는 박 사장네 가족, 가진 건 없지만 집안 분위기 하나만큼은 정말 끝내주는 기택네 가족. 심지어 이 가족은 이름도 ‘기’택, ‘충’숙, ‘기’우, ‘기’정이다.(은유나 상징이 없이도, 그냥 기생충이다.) 마지막으로 포스터에는 등장하지 않는 문광,근세 부부가 있다. ‘어느 가족’과 ‘기생충’이 보여주는 가족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이들을 통해 사회문제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양말이 계속 떠올랐다. 반지하 선풍기건조대에 걸려 말라가고 있던 양말. 반지하에 사는 기택네 가족은 가진 건 없지만 화목하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반지하 집 창문으로 보이는 가난한 골목이다. 반지하 거실 높은 곳에는 양말이 걸려 있다. 선풍기 한 면을 떼어 사용하는 양말건조대의 양말은 지하의 습기 때문에 제대로 마르지 않는다. 와이파이 사용조차 기생해야 하는 형편이지만, 핸드폰을 높이 들어야 잡힌다는 기택의 말에 따라 끝내 무료 와이파이를 잡아내고, 화장실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남매의 모습에서는 세상에 대한 비관이나 무능한 부모에 대한 불평은 찾아볼 수 없다.

어느 날, 온가족 모두 ‘맨발’로 피자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들 가족에게 명문대에 다니는 기우의 친구 민혁이 찾아온다. 민혁은 기우네 집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상자 속에 있는 ‘산수경석’을 선물한다. 이 돌이 돈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수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날 장수생 기우는 친구 민혁에게 고액과외를 넘기고, 그 과외를 받기 위해 기우는 기정의 놀라운 ‘손기술’을 빌린다. 위조된 문서를 보고 기택은 ‘서울대 문서위조학과’를 운운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이 행운이 어쩌면 산수경석 덕분인지도 모른다는 신박한 해석을 덧붙이며.

 

 

 

 

 


기우는 다혜의 영어교사가 된다. 기우의 소개로 동생 기정은 다송이의 미술과외교사가 되고, 남매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박사장네 집으로 들인다. 기택네 가족이 영어 과외교사와 미술 과외교사, 기사,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 그러니까 벌이가 괜찮은 을이 되기 위해 원래의 ‘을’들을 과감하게 내친다. 반지하에 사는 끈끈한 가족은 깊은 지하에 사는 더 끈끈한 가족을 끌어내리고서야 그 자리를 차지한다. 박 사장네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그 집에 살았던 문광은 한밤중에 가방 두 개만 챙겨서 도망치듯 쫓겨난다.

이 단란한 가족은 각기 명문대생으로, 일리노이대 응용미술과 제시카로, 30년 경력의 김 기사로, 그러니까 나름 괜찮은 존재로 포장하긴 했지만 반지하에 눅진하게 배어 있는 냄새까지 포장하지는 못한다. 어린 다송이는 김 기사와 가정부에게서, 기정에게서 똑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단정한 수트로도 가릴 수 없는 ‘냄새’. 박 사장이 말하는 ‘선’과 냄새는 한집에 있지만, 그들이 결코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것과, 선명하게 들리는 말로 감출 수 없는 냄새와 선은 그들을 설명하는 전부이다. 기택네 가족은 박사장과 연교를, 다혜와 다송을 완벽하게 속였지만, 그들은 결코 그 아슬한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이런 점에서 냄새는 모멸감의 다른 이름이다.

 

 

 

 

 


기택은 코를 막고 근세의 시신 아래서 키를 꺼내는 박 사장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근세는 기택처럼 대왕카스테라 사업을 하다 망한 가장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자신이 느꼈던 모멸감의 실체를 대면한 기택은 충동적으로 칼을 들고 박사장에게 달려든다.(기택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악도 정당화될 수 없다.) 결코 공생할 수 없었던 세 가족은 각기 다른 비극을 맞이한다.

프랑스 현지에 공개된 포스터를 보며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포스터에는 단란한 두 가족이 있다. 박 사장네 네 가족은 거실 가운데, 기택네 가족은 박 사장네 가족의 바깥쪽에 있다. 박 사장네 가족은 모두 신발을 신고 있지만, 기택네 가족은 모두 맨발이다. 박 사장네 가족을 알기 전부터 반지하에서 말렸던 그 양말을, 그들은 신지 못했다. 신었다 하더라도 축축하고 눅눅한 양말은 빈곤한 냄새가 되어 그들의 가난함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박 사장은 기택의 냄새를 설명하면서, 행주가 마를 때 나는 냄새라고 묘사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근세가 살던 지하에서 살면서 모르스부호로 편지를 쓰는 기택과 보낼 수 없는 답장을 쓰는 아들 기우의 편지 영화의 첫 장면이 다시 겹친다. 여전히 양말은 선풍기 건조대에 걸려 말라가고 있다. 그 가족은 뽀송하게 마른, 냄새 나지 않는 양말을 신고 미세먼지 없는 ‘프레시한’ 공기가 있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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