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한 강원연구원장
정말 마지막 외출이 되어버린 폭염과 노을의 저녁 풍경입니다.그 외출 다음 날 어머님 집 거실에는 천장과 바닥을 연결하는 봉과 화장실까지의 핸드레일이 놓여졌습니다.어머니의 거동을 돕는 최소한의 도구였죠.평소 자존심이 남다른 당신도 설치에 동의하셨는데 아마 오히려 우리를 배려하신 것일 겁니다.저녁에는 형제들이 다시 거실에 모였습니다.그리고 중국요리를 잔뜩 배달시켜 성찬을 시작했습니다.어머니도 식탁 모서리에 앉아 자식들의 향연을 바라보십니다.그러다 불쑥 말씀을 던지십니다.“너희들 참 얄밉다.나는 아까 요만큼 줘놓고 너희들만 실컷 먹는구나.” 우리가 어머니를 이해하는 한 이 표현은 자식들과 함께 있는 흐뭇함을 드러내신 최고의 유머입니다.더구나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말입니다.며느리가 발라드린 새우를 입에 대시면서 한마디 더 하십니다.“하나만 빼고 다 있구나.”4형제와 며느리 중 막내 내외만 없다는 말씀이지요.사실 막내는 전날 내려와 불침번을 서고 서울로 올라간 터였지요.결국 그 자리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찬이 되어버렸습니다.당신께서는 단 두 마디로 부족한 자식들을 위로하시면서 생전 마지막 점호도 하신 겁니다.그날 밤 어머니는 갑자기 닥친 서너 시간의 극심한 통증을 뒤로하고 90의 안타까운 생애를 마무리하셨습니다.들여 놓은 거실 봉과 핸드레일은 한 번도 쓰이지 않았고요.
점심 가다 만난 작은 기적입니다.춘천 옥천동 좁아터진 옛날 골목.빨간 겹채송화 한 송이가 아슬아슬 시멘트길 틈새에 자리 잡았습니다.건너 화분에서 내려 왔을 씨앗 한 알,폭염과 길 위로 지나쳤을 많은 발걸음들을 참 질기게도 견뎠나 봅니다.지나치다 도로 와서 한참을 내려다봅니다.순간 그저 생각만 했지 얼마 전 가신 그분께 만들어 드리지 못한 채송화 화분이 못내 아쉬워집니다.(2018.8.20)
지나면 모든 것이 아쉬움과 후회입니다.아니 하늘이 무너지거나 상실의 아픔으로 정상적인 삶이 어려울 거라는 상상까지 했었습니다.그러나 세상은 전과 다름없이 흐르고 나 역시 별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어쩌면 더 욕심스럽게 하루하루를 지냅니다.그래서 어머니 가신지 1년인 오늘이 가신 그날보다 더 슬퍼집니다.
김여진
beatle@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