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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명 동원 31년 만에 완공 ‘크메르 건축술의 꽃’

[이석권 교수의 도시건축기행] 5. 캄보디아의 상징 앙코르 와트
세계 최대 규모 석조가람
‘비슈누’신 봉헌 위해 건립
뛰어난 좌우대칭성·시각성
1층 회랑 둘레 804m 달해

데스크 2019년 08월 17일 토요일
▲ 해자에 비친 아름다운 앙코르 와트.
▲ 해자에 비친 아름다운 앙코르 와트.

조선시대 말기 북유럽 선교사가 한 겨울동안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가서 우리 문화에 대해 대표적인 갓과 대청마루를 예로 들면서 장문의 기고문을 작성했다.많은 성인 남자가 쓰고 있는 갓은 방한이나 방풍 등의 기능은 전혀 없고,단지 멋을 위한 것이며,집집마다 있는 대청마루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2면이 트여있어 공간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없고,단지 집을 지을 때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집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한 공간에 불과하다고 서술하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허례허식에 대해 비판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그 선교사가 한 여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됐고,또다시 우리 문화의 대표적인 문화인 갓과 대청마루에 대해서 보다 긴 장문으로 조선의 문화에 대해 서술했다.이 나라의 갓이라는 모자는 가볍기는 세상에서 제일 가볍고,햇빛과 바람을 막아주고,비가 올 때는 우산의 역할까지 하는 다양한 기능 뿐 아니라 한복과 어울리는 최고의 멋진 형태를 갖고 있다.또한 집집마다 있는 대청마루는 거실이자 식당이며,한 여름 밤 자연통풍으로 인한 시원한 침실의 기능까지 갖춘 다목적 기능을 가진 공간이면서,형태적인 멋스러움까지 갖춘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면서 자신의 편협된 무지함을 반성하면서 한 지역,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지역의 문화 및 자연환경,역사,그리고 관습의 이해까지 필요함을 역설했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20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다.그 중 1500년은 영광의 앙코르 왕국시대이고,그 이후의 500년은 암흑의 캄보디아 시대다.인구 1600만 명,면적은 한반도의 0.8배인 18.1만㎢,언어는 크메어,1인당 국민소득 1500달러,킬링필드로 알려진 전형적인 약소국이다.그러나 과거의 이 나라는 한 시대 동안 한 지역을 지배했고,새로운 문화를 창출한 앙코르 왕국이었다.9~15세기까지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한 앙코르왕국의 수도인 앙코르는 크메르 문명이 낳은 힌두교와 불교의 가람유적이 군집해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유적군이다.세계문화유산을 포함한 주요 유적이 99개이며,1000여 개의 각 종 유적이 서울면적의 절반 정도의 대평야에 펼쳐져있다.이 중 앙코르 와트(Angkor Wat)는 앙코르 톰과 함께 앙코르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초 크메르 제국의 왕인 수리아바르만 2세에 의해 왕조를 위한 사원으로 만들어졌다.힌두교의 3대 신 중에서 평화와 유지의 신인 ‘비슈누’신을 봉헌하기 위해 지어졌으나 후에 상좌부 불교(소승불교라고도 하며 남방아시아 불교를 일컬음)사원으로 사용하게 된 앙코르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이다.크메르의 건축술이 가장 발달한 시대인 12세기에 매일 1만5000명을 동원해 불과 31년 만에 건축된 앙코르 와트는 세계 최대의 석조가람이다.개방형으로 건축되어 좌우대칭미와 뛰어난 시각성을 자랑한다.중심에 다섯 사당이 연꽃 봉우리 모양의 탑처럼 솟아있고,그 주위를 3중의 회랑과 둘레 담,그리고 해자로 에워싸고 있다.또한 1층 회랑은 그 둘레가 804m로 동서남북 각 면에 각각 다른 주제의 신화가 2개씩 조각되어 있다.앙코르 와트는 불교가 국교로 받아들여지면서 상좌부 불교사원으로 재탄생했다.그러나 이러한 앙코르 와트를 만든 앙코르 왕국은 15세기초 아유타야 왕국의 침공으로 함락되고,왕도가 현재의 수도 프놈펜으로 쫓겨가면서,19세기 후반 재발견돼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정글 속에 묻혀버렸다.

▲ 얼굴표정과 모습이 다른 앙코르 와트의 데바타상.
▲ 얼굴표정과 모습이 다른 앙코르 와트의 데바타상.

앙코르 제국의 밀집해 있는 많은 유적과 앙코르 와트(60만개의 회색사암으로 이뤄졌으며,그 채석장은 40㎞ 떨어져 있다고 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왕위계승방법과 이 건물들을 지은 사람들의 종교관을 이해해야 한다.

앙코르왕국의 왕위계승은 세습이 아니라 무력이나 실력으로 왕위를 쟁취했다.때문에 왕위에 오른 새로운 왕은 거대한 도성과 호화로운 왕궁,그리고 장엄한 국가가람을 지어 그 권위를 과시해야 했다.그리고 이들의 힌두교는 많은 신을 신앙하는 다신교(신의 수가 무려 3억3000만개 라고 함)이며,그 신을 믿음으로써 종교적 구원을 받는 신앙종교이며,이들의 신분세습제도는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4가지 계급으로 신분이 정해져있어,태어난 후 평생 그 신분이 바뀌지 않는다.이러한 신분제도를 가진 힌두교의 교리는 신만 믿어서는 안되고,규범과 의무를 충실히 지켜야만 종교적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생전의 행위에 따라 다음 생의 신분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한다.따라서 그 공사를 담당했던 이들은 다음번의 생을 생각하거나 해탈을 위해 현재 자기의 신분에서 할 수 있는 행위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1000여개의 군립된 유적문화와 단기간에 완벽하게 건설된 앙코르 와트는 아마도 이러한 문화와 이들의 종교관을 잘 활용한 지배계층의 강력한 힘과 지도력이 함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석권 강원대 건축과 교수

△춘천고,강원대 건축공학과 졸업 △한양대 공학 석사,강원대 공학 박사 △대한건축사협회,한국도시설계학회,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정회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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