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영화제 칼럼]2. 올드 마린보이
해저속 해산물 채취 가족생계 책임
현대 사회 아버지 사랑·희생 그려

▲ 영화 ‘올드 마린보이’ 스틸컷
▲ 영화 ‘올드 마린보이’ 스틸컷

대한민국 동해 최북단 ‘저도어장’ 개장일.만선의 꿈을 향한 질주가 시작된다.수백 척의 배가 경쟁하듯 바다를 향해 달려 나가는 한가운데,잠수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있다.작은 키에 다부진 몸매,그을린 피부 사이로 굳게 다문 입술.긴장된 표정의 이 남자,머구리라 불리는 심해 잠수부 박명호다.

누군가에겐 멋진 낭만을 선사하는 바다.하지만 심연에는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잠수부 ‘머구리’들이 존재한다.한 가닥 공기 공급 줄에 의지한 채 해산물을 잡아 올리는 심해 잠수부.주인공 박명호는 오늘도 죽음을 각오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진모영 감독의 다큐 ‘올드 마린보이’는 머구리라는 직업을 통해 탈북민이자 아버지로 살아가는 그의 삶을 집약한다.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북한에서 죽음의 탈출을 감행한 박명호 가족.하지만 이들 가족에게 대한민국은 천국도 낙원도 아닌 또 하나의 전쟁터다.무엇으로 먹고 살아야할지,토박이들의 텃새는 어떻게 견딜지,가족들은 잘 동화될 수 있을지,간단치 않은 문제들이 거대한 파도처럼 박명호 씨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영화는 탈북자의 현실을 냉철하게 따라간다.아내와 두 아들을 지키기 위해 짙은 어둠의 해저로 자진해 들어가는 주인공.어른 덩치보다 커보이는 대왕문어를 마주한 그는 온몸을 감싸는 문어의 괴력에 맞서 사투를 벌인 끝에 잡아올리는데 성공한다.탄성을 자아내는 영화의 백미,하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탈진한 상태로 돌아가는 그의 지친 몸이 우리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기 때문일까.아니면 오늘도 전쟁터로 아버지를 내모는 우리 사회의 잔인함을 보았기 때문일까.

지미숙 2019 춘천영화제 시민패널단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