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인 아버지를 둔 가족은 명절때면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외에 딱히 할일이 없었다.독자인데다 홀로 월남하셔서 가까운 친척이 전무했고 성묘하러 갈곳도 없었기 때문이다.명절예매표를 사기위해 기차역에서 긴 줄을 서거나 추석때 길이 막혀 몇시간씩 늦었다는 얘기는 TV나 신문에서 볼수 있는 ‘남의 일’이었다.

이런 집에 시집온 며느리는 명절때 시댁식구들과 부딪치고 전을 부치는 등의 음식장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몇시간씩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시댁을 가는 것이 아니고 ‘남들 처럼’ 그렇게 많은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시집와서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 며느리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며느리가 언제부턴가 명절을 앞두고 소화불량과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명절 증후군’을 앓으면서 이 증상은 남편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됐다.‘명절 증후군’은 수면아래 잠복해있던 부부간 갈등을 끄집어내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게 했다.며느리의 전유물 같았던 ‘명절 증후군’이 요즘에는 시어머니나 남편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나타난다고 한다.허례와 형식에 매달리면서 다투다보니 서로간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또다시 추석이다.‘추석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과의 만남이자 그리움,또 자손이 한자리에 모여 형제애를 확인하는 자리’(김병일 전 국학진흥원장)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노동의 시간’으로 작용하면서 고통을 주고있다.오죽했으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명절차례 거국적으로 좀 없애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겠는가.

남녀 차별이 남녀 평등으로,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변화면서 가치와 관념도 달라지고 있는 만큼 추석차례를 지내는 방식도 시대에 맞춰야 한다.명절과 차례에 대해 가족들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온 가족 친척들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을 TV속이 아닌 현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명절 증후군’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듯 하다.

진종인 논설위원 whddls25@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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