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호칭 불러봐요
가족간 비대칭성 공감대 형성
여가부 설문 96% “문제 있다”
장인·장모 대신 아버지·어머니
>>잔소리는 이제 그만!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 호소
젊은세대 ‘대피소’도 등장
“명절 연휴 서로 배려해야”

새해 달력을 받자마자 체크해놓고 기다렸던 추석연휴.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정지시키는 반가운 명절이지만 막상 코 앞으로 다가오면 스트레스 지수에 적신호가 켜진다.가사노동 분담 문제로 부부끼리 투닥대기 일쑤고 온라인에서는 젠더전쟁이 벌어진다.오랜만에 회포 푸는 자리에서 술 한잔 들어가면 정치 토론에 얼굴 붉히는 일도 집집마다 다반사.취업난과 경제난 속에 각자 안부를 함부로 묻거나 덕담 한마디 하기도 조심스럽다.배려의 말 한마디로 명절 기분을 보름달처럼 밝혀보자.

# ‘新 명절 풍속도’




“명절에 시‘댁’에 가서 ‘도련님’,‘아가씨’ 할 때마다 조선시대 사극에 나오는 몸종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민망합니다.남편처럼 저도 부남,부제라고 하고 싶네요”(여성 누리꾼)

“도련님,서방님 소리가 존칭이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단순히 호칭일 뿐이지요.처남,처제도 하대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지칭어일 뿐이지요.”(남성 누리꾼)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생각함에 ‘가족 호칭의 비대칭성’에 대한 주제로 글이 올라오자 달린 누리꾼들의 댓글이다.위에 소개한 여성 누리꾼 의견은 가장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기존의 가족 호칭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여성가족부가 올해 초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6.3%가 가족호칭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여성가족부는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시행 과제 중 하나로 ‘성비대칭적 가족호칭 개선’을 선정,개선작업에 나서기도 했다.가족 호칭 개선이 정부차원에서 논의하는 사회적 쟁점이 된 것이다.

친인척 호칭 자체가 많고 복잡한 것은 둘째치고 남성 중심으로 붙여진 경우들이 많다.‘친가’는 친할 친(親) 자,외가는 바깥·타인이라는 의미의 외(外)자를 써서 구분하는 것을 비롯해 시댁은 ‘댁’으로 높여부르고,처가는 ‘가’로 부르는 것에서 차별을 느낄 수 있는만큼 양쪽 모두 ‘시가’와 ‘처가’,혹은 ‘시댁’과 ‘처댁’으로 통일해서 부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장인어른·장모님이나 시아버님·시어머님 대신 양가 부모님 모두 ‘어머님·아버님’으로 통일하자는 개선안도 제기됐다.또 남편의 동생을 부를 때 쓰는 도련님이나 아가씨,남동생의 아내를 부르는 올케 보다는 ‘OO씨’처럼 직접 이름을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도 꾸준히 나온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지난 8일 기존 가족 호칭으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추가로 사용할 만한 호칭을 제안했다.올 초부터 설문조사와 우수사례 공모,토론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한 결과다.전문가 검토를 거쳐 배우자 부모의 경우 ‘아버님·아버지’ 또는 ‘어머님·어머니’로,배우자의 손아래 동기는 ‘이름(+씨)’로,자녀의 조부모는 ‘할아버지·할머니’로 정리했다.

# 잔소리 하려면 돈으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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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잔소리 하려면 그 스트레스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잔소리 메뉴판’이 최근 등장,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메뉴판은 ‘졸업은 언제 하니’는 5만원,‘취업은 언제 하니’를 10만원에 책정했다.연봉을 묻는 질문은 20만원,‘결혼을 언제하냐’는 질문은 30만원이다.통계청은 이같은 명절 잔소리에 통계수치로 대응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대학 졸업기간은 평균 4년 2.8개월,졸업 후 첫 취업까지는 10.8개월,대한민국 임금근로자 중 4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는 사람은 16.8%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잔소리를 방어(?)하자는 취지다.

‘명절 대피소’도 등장했다.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15년 서울의 한 어학원이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당일치기 귀성객 급증 등 명절 문화자체도 바뀌고 있다.올해 초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통계로 본 10년간 추석의 경제,사회상 변화 리포트’에 따르면 추석 당일 귀성객 비중이 2006년 27.7%에서 2016년 51.8%로 껑충 뛰었다.혼자 추석을 보내는 ‘혼추족’도 급증세다.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성인남녀 2835명을 대상으로 ‘추석계획’을 조사,지난 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성인남녀 5명 중 1명이 올 추석을 혼자 보내겠다고 답했다.누구와 추석을 보내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28.8%가 ‘나 혼자’를 꼽은 것이다.친지모임에 불참하겠다고 밝힌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39.4%)를 1위로 들었다.이어 ‘현재 나의 상황이 자랑스럽지 못해서(26.8%)’와 ‘평소 왕래가 없어서(21.5%)’가 차례로 2,3위에 올랐다.

박기남 도여성가족연구원장은 “맞벌이가 보편화되고 있는 만큼 명절음식 준비 뿐 아니라 장거리 운전을 나눠하고 양가방문도 번갈아 하는 평등한 명절을 실천해야 한다”며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면서 웃고 쉬는 명절이 되도록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승미 singm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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