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남북관계’ 기대 컸지만…북미관계 답보 속 정체 ‘구조적 취약성’ 노출

▲ 평양공동선언 1년, 사라진 냉전의 벽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 최전방 감시초소(GP)에는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나무의 위치는 현대사에서 한반도의 운명과 함께 했던 북위 38도 선이다. 나무를 끌어안고 있던 이 GP는 지난해 남북정상의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철거됐으며 현재 나무만 남아 있다. 왼쪽은 광복 70년이었던 2015년 GP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GP가 사라진 2019년 9월의 모습이다. 2019.9.16     andphoto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 최전방 감시초소(GP)에는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나무의 위치는 현대사에서 한반도의 운명과 함께 했던 북위 38도 선이다. 나무를 끌어안고 있던 이 GP는 지난해 남북정상의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철거됐으며 현재 나무만 남아 있다. 왼쪽은 광복 70년이었던 2015년 GP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GP가 사라진 2019년 9월의 모습이다. 2019.9.16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지난해 9월 19일, 평양 ‘5월 1일 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시민 15만 명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남한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직접 연설한 첫 장면으로 기록됐다. 그 강렬한 상징성은 남북관계가 분단체제를 딛고 평화 공존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키웠다.

9월 평양 정상회담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기대가 현실로 이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채택한 ‘평양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실질적 전쟁위험 해소에서부터 구체적 경제협력 구상, 인도주의 및 사회문화 분야 협력,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진전시킬 다양한 조치를 담았다.

그러나 북미 비핵화 협상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9월 평양선언의 여러 합의사항도 ‘첫발’만 뗐을 뿐 이행을 위한 본궤도에는 오르지 못했다.

올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막을 내린 뒤 한반도의 대화 흐름을 이끌고 갈 동력이 사라지면서 남북관계도 멈춰 섰다.

남북은 평양 정상회담 약 한 달 뒤인 지난해 10월 고위급 회담을 열고 철도·도로 협력, 산림협력, 보건의료 협력, 2020년 도쿄올림픽 공동 참가 등 체육협력,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 평양선언 이행을 위한 분야별 일정을 마련했다.

이후 지난해 말까지 몇몇 분과회담과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개최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남북 간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평양선언 합의사항인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복구와 화상상봉 등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은 개최조차 못 한 상황이다. 남북의 정식 회담은 지난해 12월 14일 체육분과회담을 마지막으로 9개월간 끊겼다.



평양 정상회담의 가장 구체적 성과로 꼽혔던 9·19 군사합의는 다른 분야 합의보다 비교적 순조롭게 이행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당시 남북은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일부 시범 철수 등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총부리를 겨누던 남북 군인들이 나란히 GP 파괴 현장을 검증하는 등 변화를 실감케 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하지만 이 역시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엔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추가적인 진전이 없이 답보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남한 당국의 첨단무기 도입이 남북정상선언과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초대형방사포’ 등 단거리 발사체를 잇달아 실험하며 자신들의 재래식 억지력 강화에는 힘을 쏟는 모습이다.

정부는 남북관계 소강 국면을 의식한 듯 오는 19일 평양 공동선언 1주년 행사도 ‘평화열차’와 기념식 등 국내 자체적으로 치르기로 했다. 북측에 참여 의사는 타진하지도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올해 들어 남북관계에 소극적으로 나온 것은 남한의 북미협상 중재 역할에 대한 회의감과 제재하에서 남북관계를 독자적으로 이끌고 가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 등이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평양선언 합의문에까지 들어갔던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가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통하지 않은 데 대한 실망이 강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북미협상과 관련해 ‘남북 간 전혀 의견교환이 없느냐’는 질문에 “연락사무소가 연락 창구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긴밀한 협의는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조만간 재개될 북미 실무협상 상황을 지켜보면서 남북관계 복원 전략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관계가 재개된다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최우선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사실상 공개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이달 하순께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된 뒤 다음 달 카타르 월드컵 남북 예선전, 아시아 역도 선수권 대회 등 평양에서 열리는 스포츠 행사를 계기로 남북이 접촉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남북관계가 바로 복원될 수 있을지, 그리고 안정적으로 이어져 나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근본적으로는 남북관계가 아직도 북미관계를 비롯한 큰 틀의 정세 상황에 묶여 움직이는 ‘구조적’ 취약함이 최근 정체국면에서 드러났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근 ‘9월 이후 남북관계 및 한반도 정세 평가 전망’ 보고서에서 “북미관계에서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미련과 집요함보다 냉정하고 신중하게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를 만들 담대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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