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거리와 외딴 심리적 소원함이 동시에 떠오르는 지역,DMZ 부근 철원이 그 중 하나다.치열한 역사의 흔적이 네모진 평야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긴장감이 느껴진다.

다행히 부근의 신라 말기 역사를 품은 도피안사 ‘철조비로사나불좌상(국보 제63호)’의 자애로운 미소가 무언(無言)의 평온을 약속한다.400년 긴 세월을 도피안사와 함께 버텨온 거북등 닮은 느티나무도 기꺼이 선선한 그늘을 내준다.

선명히 도드라진 북관정 옛터에서 누런 벼 이삭 떨어진 철원 평강지역을 바라보니 괜스레 코 끝이 시큰하다.저리도 가까운 우리 한반도 땅이거늘, 손끝에 닿을 듯 지척의 산 너머에 한민족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다니 불현듯 가슴이 애련하다.

조금 더 달려 철원읍 대마리 일대로 오니,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처절하게 견뎌온 철원의 비극적 애잔함을 펜으로 저항한,시대의 문학가 ‘상허 이태준 선생(1904∼1970)’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선생의 문학비와 흉상이 한반도의 숙원, 평화통일을 염원하듯 북쪽을 바라본다.

성황당길로 접어드니 수심 깊은 연못이 상상된다.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의 깊이가 전신을 오싹하게 했을 것이다.누군가를 깊은 연못 속으로 끌어 내려야만 내가 살 수 있는 현실,그리고 금쪽같은 자식이 언젠가 맞게 될 그 무시무시한 운명을 차마 두고 볼 수 없던 어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치마 폭 하나 가득,수 없이 돌을 날라 급기야는 ‘저주의 연못’을 온 몸으로 메운 어머니의 사랑이 그려진다.

이태준 선생은 무겁고 거친 돌을 나르며 죽음의 웅덩이를 메워낸 어머니의 무한사랑을 소설로 완성시켰다.갈기갈기 해진 치마 폭 사이로 샘솟듯 터져 나왔을 것이다.이제는 성황당길 커다란 병풍 같은 바위가 드러나,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남쪽을 향해 듬직이 서 있다.

철원에서 천년을 내리 산 토박이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지붕 없는 철원역사박물관의 관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주섭 강사와 동행한 지난 주말의 강원여성연구소 탐방 마지막 코스에서 펼쳐진 철원벌 코스모스와 천일홍 물결이 한반도 최북단까지 이어지는 그날을 그려본다.

임나현·글로벌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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