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

▲ 이영춘 시인
▲ 이영춘 시인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口禍之門),혀는 몸을 베는 칼(舌斬身刀)이란 말이 있다.이와 같은 뜻으로 설검순창(舌劍脣槍)이란 고사가 있다.나는 교직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이 고사를 종종 언급했다.

중국 수나라 명장 ‘하약필’이란 사람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한 장수다.그가 입이 무겁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뼈아픈 유언 때문이었다.하약필의 아버지 하돈은 관리를 지낸 분이었다.그런데 어느 날 임금에게 한 말이 화근이 되어 갖은 고초를 겪다가 마침내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형장에서 그는 아들을 불렀다.“이 아비는 살아오면서 후회할만한 일은 없다.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 ‘혀’를 잘못 놀린 탓으로 평생의 공덕이 무너지고 죽게 되었구나!너에게 부탁하는데 절대로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가슴 속에 숨겨 두었던 송곳으로 아들의 혀를 찔렀다.“아비가 오늘 네 혀를 찌른 것을 명심하고 아비의 심정을 잊지 말라”고 유언했다.아들은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그러나 일평생 입이 무겁고 허튼 소리 한 번 안 하는 장수로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이 글을 인용하다보니 말로 인해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생각난다.사마천의 궁형은 이능 장군을 변호하느라 일어난 사건이다.5000의 병사로 8만 흉노족에 포위되어 1만여 명의 적의 목을 베긴 했으나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이 소식을 들은 한의 무제는 이능을 처형한다는 어전회의를 열었다.사마천은 대의적인 명분으로 바른 말로 맞섰다.죄인을 두둔한다는 이유로 사마천은 투옥된다.그리고 끝내 남성의 상징인 생식기를 잘리는 형을 당하고 말았다.여기서 우리는 정의로운 말과 불의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 우리는 어떤 말이 정의로운 말이고 어떤 말이 불의의 말인지 분간할 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모두가 자기가 하는 말은 옳고 남의 말은 다 옳지 않은 말로 치부하기 때문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말싸움으로 하루가 새고 저문다.각종 뉴스는 물론이고 서로가 가짜 말이고 가짜 뉴스라고 한다.어떤 것이 진짜이고 누구의 말이 참말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말을 대신하는 트위터니 SNS니 페이스북이니 카톡이니 하는 문자화 시대가 한 몫 더한다.혀를 대신하는 문자가 밤낮으로 사이버 공간,핸드폰,카톡방에서 불을 뿜는다.문제는 혀를 대신한 말이기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그럼에도 우리는 당장 얼굴이 안 보이는 공간이라 하여 마구잡이로 상대편 인신을 공격하고 비하하고 비난한다.그로 인해 유명 연예인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 예도 있다.간혹은 법망에 걸려드는 일도 종종 보고 듣는다.

어제는 나도 카톡방에 올라온 지인의 말,비꼬는듯한 문자 한 마디에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화만 내고 만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상처를 남기는 문자로 상대를 공격했다.몇 시간 지나고 나니 후회가 됐다.말은 곧 그 사람의 품격이다.내 품격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우리 삶의 상처는 대부분 혀,즉 말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요즈음 우리 사회는 말에 말이 물리고,할퀴고 또 할퀴어져 이전투구를 방불케 한다.참말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참말이 되는 세상이다.어떤 말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송곳같은 한 마디 말이 진정으로 정의를 세우고 죽일 수 있는 참말이 그리워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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