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극단 ‘6월 26일’ 공연]
전쟁 휘말린 두 소년의 삶 조명
한국 근현대사 아픔 그린 작품
창작집단 쵸크 24·퓨처 이모션
동일 스토리로 각각의 무대 꾸며
25일까지 KT&G상상마당 춘천일 극단 사카타니 히토시 연출가
“아픈 역사 이겨낸 한국인 존경”

“역사적 차이를 설득하는 힘,연극에서 나옵니다.”

▲ 한국 극단 창작집단 쵸크24
▲ 한국 극단 창작집단 쵸크24

1950년 6월 26일 춘천대첩.그 역사적 비극에서 엇갈린 두 강원도 사람의 슬픈 운명을 한일양국 극단이 함께 그려낸다.한국 극단 ‘창작집단 쵸크 24’,일본 극단 ‘퓨처 이모션’이 KT&G상상마당 춘천 사운드홀에서 매일 번갈아 공연하는 연극 ‘6월 26일’.격동의 한반도,그 처절한 이념 갈등 속에서 흔들리는 청춘들을 춘천대첩의 현장에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나란히 표현해 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극은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 해변에서 촬영된 사진 한장에서부터 시작됐다.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조선인.그가 미 육군정보부에 남긴 증언에 따르면 일본에 의해 강제징집됐던 그는 만주국경 분쟁 때 소련군 포로가 돼 붉은군대에 복무했고,소련과 독일간 전쟁에서는 독일군에 붙잡혀 대서양 방어선 구축에 강제 투입됐다.이어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는 다시 미국의 포로가 됐다.당시 독일 군복을 입은 조선인은 10명쯤이었다고 알려졌다.장태준 연출가는 이들이 조선에 돌아온 후를 상상하며 희곡을 써 내려갔다.

작품은 제17회 춘천국제연극제 3관왕(대상·연출상·연기상),제31회 부산국제연극제 Go world festival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고 러시아와 일본에 공식초청됐다.2016년 일본 공연 당시 사카타니 히토시 퓨처이모션 대표가 “첫 눈에 반했다”며 일본어 공연을 요청하면서 양국 연극교류의 문이 열렸다.

▲ 일본 극단 퓨처  이모션
▲ 일본 극단 퓨처 이모션

작품의 주인공 연춘과 순년은 모두 강원도 출신으로 설정됐다.미국 포로가 되면서 헤어지게 된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조선에 돌아왔지만 6월 26일 춘천대첩에서 서로 다른 편에 서서 각각 이승만 대통령 만세와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친다.귀향만을 꿈꿨던 두 사람은 결국 동족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 아픈 이야기를 한일 양국 극단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먼저 한국 공연은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주인공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연춘은 춘천 출신으로 남한 말투를,순년은 통천 출신으로 북한 사투리를 쓴다.분단의 비극을 암시하는 부분이다.어린 소년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수없이 생을 마감하고자 시도하는 연춘과 포로생활에 적응한 순년의 모습이 대비된다.

이와 달리 일본극단의 공연은 개인의 감정변화에 집중,이를 극대화시켰다.세트,조명,소품 등 모든 것을 간소화하고 인물들이 겪는 물리적·감정적 변화에 주목했다.천왕폐하 만세를 외치던 이들은 어느새 스탈린 만세를,또 히틀러 만세를 부르짖는다.극한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감정의 호흡을 길게 유지해 나가는 연출방식이다.

인물 표현도 다르다.일본 공연은 순년이 연춘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한국 공연은 형으로 그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포로생활의 처절함도 한국 공연이 더 강조됐다.관객 정찬권 씨는 “양국 공연을 연속으로 봤는데 느낌이 전혀 달랐다.같은 작품이 연출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고 말했다.

공연에 앞서 마련된 심포지엄에서는 양국 연출가와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극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열띤 토론도 벌였다.양흥주 연극배우는 “역사적 견해에 기반한 설득보다 더 강한 설득의 힘을 가진 것이 연극”이라고 강조,양국의 공감을 샀다.연극에서 순년 역을 맡기도 한 양 배우는 “역사적 사실이나 국가적 이익은 핍박받은 한 인간의 사연을 먼저 본 후 생각할 일”이라며 “연극에서 나타난 일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결할지 거꾸로 올라가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장태준 연출가는 “러시아 공연 때 소련군 포로수용소 이야기를 순화해야 하나 염려했지만 기립박수까지 받았다”며 “우리나라가 피해자의 역사를 갖고 있어 스스로 더 걱정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이어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 친일청산 등의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일본도 과오를 인정할 시작점을 놓친 것부터 잘못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연극을 통해 한일교류도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사카타니 히토시 연출가는 “일본인 대부분의 생각은 아시아 여러 국가에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 일반적이다.하지만 계속 사과를 요구받다보니 ‘이 이상 어떻게 사과하라는 것이냐’며 태도가 돌변한 것도 사실”이라고 일본 분위기를 전하면서 “하지만 이번 연극을 준비하며 아픈 역사를 이겨낸 한국인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일본 연극배우들도 “카페에서 처음 작품을 읽었을 때 눈물이 멈추지 않아 다른 손님들을 피했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공연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 공연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한일 두 연출가는 이번 작품을 통한 최종 꿈으로 “연극의 출발점이 된 사진이 촬영된 노르망디 해변에서의 공연”이라고 입을 모았다.연극은 25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한승미 singm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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