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춘천을 찾은 석창우 화백(64)의 신앙 고백 겸 강연을 감명 깊게 들었다.그는 불의의 사고로 팔을 모두 잃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는 의수(義手)화가다.두 팔이 없는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통 상상하기 어렵다.그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팔을 다 가진 사람이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독특한 예술 영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명지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전기 기사로 일하던 1984년10월29일 2만2900V 감전사고로 양 팔을 잃었다.그러나 시련을 딛고 그림에 도전해 동양의 서예와 서양의 크로키를 접목한 ‘수묵크로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신체장애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이야기는 올림픽을 통해서도 소개됐다.그의 수묵크로키 퍼포먼스는 2011년 강원도를 찾은 평창 동계올림픽 실사단에 깊은 인상을 줬고,2014년 소치 동계패럴림픽과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도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팔이 없는 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됐다”라고 했다.보통은 팔을 이용해 기교를 부리게 되지만,팔이 없는 대신 온몸으로 혼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1년 반 동안 12번의 수술을 받고 퇴원한 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는 아빠가 되자”라고 결심했다.신앙의 힘이 컸지만 아이들도 그를 일으켜 세웠다.전기 일을 하면 감전 확률이 있고 책임자인 내가 다친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됐다.할 수 있는 일도 차츰 보였다.걸을 수 있고,의수를 착용할 어깨가 남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통해 마음을 잡았다면 제2 인생을 만들어 준 것은 아내였다.스물다섯 젊은 아내는 생계는 자신이 책임질 테니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격려하며 두 팔이 돼 주었다.그래서 지금 아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했다.호칭은 사모님으로 바꿨고,방바닥을 닦고,신발정리를 하고,심부름도 한다.심부름을 안 시키는 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오늘이 그가 사고를 당한지 35년째 되는 날이다.긴 세월을 지킨 저변에 가족이 있었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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