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서 영월군수

▲ 최명서 영월군수
▲ 최명서 영월군수
숫자 1이 네개가 겹치는 11월 11일.한자로는 흙 토(土)자가 겹치는 이 날은 200만 농업인의 날이다.정부에서 정한 공식 기념일이자 예전부터 농민들 스스로 지켜온 날이기도 하다.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많은 젊은이들이 빼빼로데이로 기억한다.특정 기업의 마케팅 때문이다.젊은이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상술에 밀려 국가 기념일이자 수 십년을 지켜온 ‘농업인의 날’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기업 탓만 할 수는 없다.농업인도,농업을 관장하는 정부와 자치단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농업인의 날이라고 하지만 사실 특별한 것이 없다.자치단체마다 기념식을 열고 행사를 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다.체육관에 농업인들 모아 놓고 지역 가수 몇 명 초청하는 위로 공연이 전부다.획일적이고 의례적인 연례 행사일 뿐이다.국민들의 관심은 둘째치고 당사자인 농업인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우리 영월군에서는 농업인단체와 함께 아주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다.상고시대 제천행사 재현이 그것이다.한해 동안 농사지은 곡물로 하늘에 제를 올리고,농민들이 한데 어울려 먹고 마시고 춤추며 놀았다는 그 옛날 상고시대 제천행사를 오늘에 맞게 재현하는 것이다.

먼저 영월의 주산인 봉래산 정상에 제단을 마련하고 천제(天祭)를 봉행한다.영월에서 생산된 농산물 중 최고의 것을 골라 제물로 올리고,천고(天鼓)를 시작으로 정화(淨火)와 천무(天舞) 등의 식전행사에 이어 천제를 봉행한다.천제가 끝나면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세 명의 선녀가 제물을 수습해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행사장인 스포츠파크로 내려 온다.행사장의 농민들은 준비된 탈을 쓰고 풍물에 맞춰 ‘영월 농부가’를 떼창하며 한바탕 난장을 펼친다.선녀들이 도착하면 내려준 제물을 함께 나누며 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행사는 절정에 이른다.이 외에도 영월 농산물품평회와 김장김치 체험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함께 펼쳐진다.

농업과 농촌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갈수록 침체되고 심지어 농촌 붕괴론까지 대두된다.경제적인 면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문화적인 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불과 40∼50년 전만해도 풍성했던 농경문화가 다 사라지고,요즘에는 농민들이 일하며 부를 노래 하나가 없다.농촌의 삶이 각박해지고 삭막해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세계의 트렌드가 된 한류.그 원형이 농경문화요,농경문화의 시원(始原)이 제천행사다.하늘에 감사의 제를 올리고,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기던 농민들의 삶에서 가요가 나오고 춤이 나오고 연극이 나왔다.그것이 오늘날의 한류로 발전한 것이다.그런만큼 이번에 우리 영월군과 농업인단체에서 시도하는 제천행사의 재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아무쪼록 많은 농업인들이 참여해 진정한 농민축제가 되고,더 나아가 농경문화의 복원과 전파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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