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흐르는 땅 태백’ 전시회]
철암탄광역사촌서 17일까지 개최
전문작가 15명 30여점 작품 더불어
광부였던 70대의 손주사랑 담은 판화 장성여고생의 합작까지

▲ 지역주민들의 생활사가 담긴 흑백사진들. 사진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소장품이 오브제로 재탄생 했다.
▲ 지역주민들의 생활사가 담긴 흑백사진들. 사진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소장품이 오브제로 재탄생 했다.

▲ 한평생 광부였던 김제길 작 ‘서우’
▲ 한평생 광부였던 김제길 작 ‘서우’

▲ 김종열 작 ‘석탄 악당(coal villain)’
▲ 김종열 작 ‘석탄 악당(coal villain)’

▲ 일본 엑스레이 작가와 장성여고 학생들의 합작품 ‘철암의 비’
▲ 일본 엑스레이 작가와 장성여고 학생들의 합작품 ‘철암의 비’

[강원도민일보 한승미 기자]도내 대표 폐광지역 태백 철암의 영광과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전시회가 있다.국내외 작가는 물론 지역 여고생과 광부 출신 주민까지 참여작가의 면면도 다양하다.철암탄광역사촌에서 열리는 ‘2019 흐르는 땅 태백’전.태백탄광문화연구소-BOW(대표 김기동)가 주관한 이번 전시는 ‘탄광을 기억하자’를 주제로 지역 곳곳에 숨겨져 있던 번영의 흔적과 쇠퇴의 아픔을 채굴하고 있다.폐광지역 재조명은 물론 예술가는 지역을 이해하고,주민은 예술에 한발 더 다가가는 자리다.



#되살아난 검은 기억

전시회의 시작은 작가 위주 프로젝트였다.태백,삼척,영월,정선 등 폐광지역 4개 시·군의 작가들과 태백탄광문화연구소-BOW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전문작가 15명이 철암의 역사와 흔적을 기록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이에 따라 지역 정체성을 담은 작품 30여점이 완성됐다.임환서 작가는 광부들이 썼던 곡괭이를 화석처럼 표현한 부조 ‘우리의 미래’를 완성했다.광부들이 석탄가루를 씻어내던 샤워시설을 쓰며 그들의 생활을 몸으로 느낀 작가는 곡괭이를 단순 도구가 아닌 전사의 무기,화석이 되어버린 철암의 아버지로 상징했다.

김종열 작가는 새빨간 눈이 강렬한 조각 ‘석탄 악당(coal villain)’을 선보였다.일반 관람객들은 ‘울트라맨’을 연상하기 쉽지만 지역 주민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날카로운 석탄가루로 검은 눈물을 흘린 광부들의 충혈된 눈이라는 것을.이밖에도 광부들이 아픔을 대변하는 김기동 대표의 ‘기억소환’,흑연으로 철암 풍경을 담은 박호영 작가의 ‘Time’ 등이 관람객 눈길을 사로잡는다.



#석탄캐던 손에 쥐어진 조각칼

한평생 광부로 일한 70대 작가도 새로 탄생했다.김제길(77) 작가는 손주의 얼굴을 담은 판화 ‘서우’를 출품했다.퇴직 광부와 가족 등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진행 판화수업의 결과다.지난 7월부터 전시장 관리업무를 하기도 한 김 씨는 짧은 수업기간 좋은 성과를 보였다.광부생활 25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아 ‘독일병정’이라는 별명도 얻었던 김 씨는 판화수업도 결석이 없었다.김기동 대표도 그의 작품에 “원래 갖고 있던 재능이 드러난 것 같다.꾸준한 코치와 연습이 이어진다면 강원미술대전에도 출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김씨는 남은 5명의 손주도 판화작품으로 만들 예정이다.그는 “심심해서 시작한 일에 흥미를 느끼고 주변에서 잘 한다고 하니 계속 해나갈 용기가 생긴다.대회가 목적은 아니지만 열심히 판화를 배울 것”이라고 했다.



#오브제가 된 옛 기억

전시장 곳곳에서는 철암 주민들의 과거 생활사도 볼 수 있다.연탄집게,자개장을 비롯해 광부복,안전모 등이 전시됐다.정겨운 옛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들도 함께다.과정은 쉽지 않았다.주민들은 대단할 것 없는 물건이나 사진을 부끄럽게 왜 전시하냐고 난색을 표했다.태풍 매미나 루사 때 살림살이가 휩쓸려가 사진을 가진 가구 자체도 적었다.김 대표의 끈질긴 설득 끝에 물건들이 한두개씩 전시장을 채우자 주민들이 ‘이런 것도 전시품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소장품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그 결과 강호택,박명신,이은솔,정보식 등 지역주민 30명의 소장품이 오브제로 재탄생했다.



#고교생이 엮은 일본 작가의 크리스탈

철암에 내리는 비를 형상화한 ‘철암의 비’는 일본 작가 ‘엑스레이’와 태백 장성여고 학생들이 함께 만들었다.엑스레이 작가는 지난 해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이후에도 “철암이 마음의 고향 같다”며 수차례 방문했다.철암에 왔던 어느 날 시장에서 만난 폭우를 피했던 순간 영감을 얻어 지난 7월 장성여고 학생들과 합작에 나섰다.작가는 빗방울을 형상화하는 크리스탈을 다듬고 학생들은 이를 낚시줄에 엮었다.엑스레이 작가는 “아름다운 자연과 친절한 이웃을 보며 언젠가 지역 주민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작품이 철암에 복을 주는 단비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이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등록문화재 21호)도 함께 방문,석탄산업 종사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전시는 오는 17일까지다. 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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