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혁 춘천지법 판사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재판장을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그러나 현실에서 변호사들이 재판장을 그렇게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고,당사자들이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대체로는 단순히 “재판장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재판장을 부를 때 존칭으로 “Your honor”라고 부르는 것이 법정예절이라고 한다.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일부 미국 판사들 역시 법정에서 막말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총기소지가 금지된 법원 로비에 권총을 흘리거나 심각한 직무유기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기도 하는데,미국인들이 판사를 더 존중하고 법정에서 더 예의를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미국 뉴저지주 빅토리아 프랫 판사는 절차의 정의(procedure justice) 또는 절차의 공정성(procedure fairness)을 이야기한다.법원에 처음 오는 당사자 대부분은 검색대를 통과하고 복잡한 건물을 헤매다가 마침내 법정에 들어서게 되는데,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법정은 낯설뿐 아니라 때로는 위압적일 때도 있어 재판 시작도 전에 이미 육체·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그러한 당사자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재판부로부터 공평하게 대접받고 품위있게(with dignity) 존중받는다고 느끼게하는 것,프랫 판사는 그것이 바로 절차의 정의이고,그러한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론을 내리더라도 재판부를 존중한다고 말한다.

프랫 판사는 당사자가 느끼는 공정성은 판사가 당사자에게 어떻게 말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첫째로 당사자에게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말할 수 없게 하더라도 그 이유를 설명해 줄 것,둘째로 사소한 표현이라도 신경 써서 어느 한쪽보다 다른 한쪽을 더 선호한다는 인상을 주지말 것,셋째로 최대한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당사자들이 절차 진행과 그에 따라 예상되는 결과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줄 것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모든 원칙에 우선하는 것으로 당사자들을 존중할 것(respect)을 강조한다.단순히 처리해야 할 한 사건의 당사자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눈을 마주보며 “선생님(어르신),안녕하세요”,“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등과 같은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거나,읽고 쓰는 것이 곤란해 보이는 당사자에게 “읽고 쓸 줄은 아시죠?”라고 묻기보다 “이 문서에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우신가요?”라고 물어봐 주는 것,이러한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바로 존중이라는 것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표현은 판사 개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헌법에 따른 사법권에 대한 존중의 표시다.그러나 판사들이 각자 방법은 달라도 당사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하고,당사자들로 하여금 어느 판사로부터도 ‘공평하게 대접받고 품위있게 존중받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면,언젠가 우리나라 법정에서도 어렵지 않게 ‘존경하는 재판장님’들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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