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패자(覇者)가 되려고 용을 쓰지만,모두가 패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모든 나라가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대국(大國)을 꿈꾸지만,이제껏 그런 일은 있어 본 적이 없다.큰 나라와 작은 나라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서로를 비춰주는 이런 상호관계가 용납되고 인정돼야 공존이 가능해 진다는 얘기다.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유혹을 받지만 결국 자기발등을 찍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공존의 틀에 대한 이해와 지혜가 필요하다.맹자는 그 핵심을 두려움과 자애로움 이 두 가지에 있다고 봤다.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어렵게 여겨야 하고,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노나라 역사서 ‘춘추(春秋)’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만약 대국이 나라를 안정시켜주면 소국은 아침저녁으로 조회할 것이니 어찌 오라는 명령이 필요 하겠습니까.만약 걱정을 덜어주지는 않고 말로만 돕겠다고 한다면 그런 명령에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원수가 되지 않겠습니까.(大國若安定之 其朝夕在庭 何辱命焉 若不恤其患 而以爲口實 其無乃不堪任命 而剪爲仇讐)”

대국 진(晉)나라의 그늘에서 늘 노심초사하는 소국 정(鄭)나라의 하소연이 담겨 있다.불러대고 명령하지 않아도 대국이 도리를 다하면 소국은 절로 따른다는 것이다.반대로 대국이 빈말만 일삼고 괴롭히면 소국은 뛰쳐나가 원수가 된다는 말이다.소국의 푸념 속에는 대국에 대한 경고의 비수가 숨어있다.핑계를 뜻하는 ‘구실(口實)’이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한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대국이다.한국은 외교 안보 경제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미국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작은 나라다.미국이 지난해의 6배에 해당하는 50억 달러(6조 원)의 방위비를 요구하고 있다.여러 구실을 달아 무리한 압박을 해온 미국이 엊그제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마저 깼다고 한다.미국은 무슨 요구든 할 수 있는 나라지만,뜻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동맹은 일방적 완력의 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와 신뢰가 있어야 유지되는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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