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의 꿈, 폐광촌 문화를 캐다] <중> 역사·예술 공존 ‘보장암 국제 예술촌’
대만 대학가 ‘공관지역’ 근처
주민·시민단체 재개발 반대
예술인 입주 작품 활동 전개
태백 삼방동 재생 청사진 활용



[강원도민일보 한승미 기자] 재개발 대상이었던 무허가 판자촌이 인기 관광지로 바뀐 비결은 무엇일까.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만의 ‘보장암 국제예술촌’ 이야기다.보장암 국제예술촌은 대만의 명문대 대만대와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점,상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대만의 핫플레이스 ‘공관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작은 절인 ‘보장암’을 지나면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마을이 나온다.

보장암 국제예술촌은 거주지가 없던 군인들이 모여 살던 무허가 주택지였다.100가구가 넘는 판자촌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쇠락해갔다.불법 건축물이 많은 반면 입지 조건이 좋아 대만 정부는 철거 후 재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그러나 주민과 시민단체 반발로 보존,마을 전체가 역사 건축물로 지정됐다.이후 리모델링과 복원작업이 진행됐고 2010년 보장암 국제예술촌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군인 자녀 등 다시 돌아온 주민은 22가구.정부는 남은 공간을 저렴한 임대료가 필요한 젊은 예술인들로 채웠다.

30여명의 예술가들이 살면서 활기를 띤 예술촌은 그 자체로 작품이 됐다.오래된 오븐은 수납함으로,망가진 다리미는 문 손잡이로 꾸미는 등 곳곳에서 예술가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관광객들은 창작의 산실인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자유롭게 구경한다.우연히 문을 연 집 안이 바로 전시장이고 곳곳에서 아트 프로그램도 진행된다.공간 진입 제한 등 주민 보호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 보장암 국제예술촌 지도.
▲ 보장암 국제예술촌 지도.


대만 예술인들에게도 꿈의 공간이 됐다.예술촌에서 만난 아티스트 산드라 루 씨는 이곳에 온지 벌써 9년째.이제는 자립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후배 예술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루 작가는 “국제예술인촌의 가치가 점점 높아져서 입주하려면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대기자도 많다.대만 예술인들이 서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태백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해 힘쓰고 있는 서양화가 백겸중 씨도 강원문화재단의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2018년 3개월여간 이곳에 머물렀다.백겸중 화가는 “저렴한 물가와 트렌디함이 공존하는 대학가 바로 앞이라 살기 좋다.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있어 서로 영감을 얻는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태백 주민들은 이곳에서 삼방동을 떠올렸다.석탄산업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삼방동은 1950년 쯤 탄맥이 발견되면서 형성됐다.석탄생산이 본격화되자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삼방산 중턱 분지에 마을을 이뤘다.산자락이나 강변 등에 마구잡이로 집이 들어서 미로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삼방동 앞 철암천 변에는 목재나 철재를 지지대로 세워 까치발을 연상시키는 ‘까치발 건물’이 들어서기도 했다.한때 600가구가 넘게 살았던 이곳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과 함께 무너졌다.

지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주거지역에 예술의 숨이 불어넣어진 보장암 국제예술촌에서 주민들은 삼방동 재생의 청사진을 그렸다.주민 이금희·최옥실 씨는 “삼방동과 비슷한 무허가지역이 큰 돈을 들이지 않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됐다는 것이 놀랍다”며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어우러진 것도 인상적이다.이 곳의 장점들을 삼방동에 적용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만 타이베이/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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