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방은진 강원영상위원장
지난해 11년만에 배우 복귀
‘사랑의 불시착’ 손예진 모친 역할
출연 앞서 횡성 폐부대 촬영 유치
“평창영화제 정체성 확립 노력”

▲ 춘천에 눈이 펄펄 내리던 오후,방은진 강원영상위원장과 그의 사무실에서 새해 첫 인터뷰를 가졌다.방 위원장이 배우 복귀 소감과 강원영상위 운영 계획,평창평화영화제 구상 등에 대해 밝혔다.방 위원장 오른쪽은 그의 반려견 마루.
▲ 춘천에 눈이 펄펄 내리던 오후,방은진 강원영상위원장과 그의 사무실에서 새해 첫 인터뷰를 가졌다.방 위원장이 배우 복귀 소감과 강원영상위 운영 계획,평창평화영화제 구상 등에 대해 밝혔다.방 위원장 오른쪽은 그의 반려견 마루.

[강원도민일보 한승미 기자] 방은진 강원영상위원장이 11년만에 배우로 돌아왔다.현빈·손예진 주연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서다.1989년 연극으로 데뷔한 방 위원장은 스크린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었다.이후 ‘집으로 가는 길’ 등의 작품으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그는 2017년 초대 강원영상위원장에 선임된데 이어 지난 해 평창남북평화영화제(PIPFF) 집행위원장으로 영화제를 처음 조직,개최했다.평창올림픽 후 뜨거운 평화의 열기를 이어받으리라 기대했던 영화제는 예상치 못한 한반도 정세변화 속에 부침을 겪었다.그리고 2020년,격려와 비판,가능성과 두려움 그 사이 어디쯤에 출발선을 다시 긋게 됐다.강원 영화계 ‘최초’라는 타이틀의 무게 아래 태운 열정을 본업인 연기로 되살리고 있는 방 위원장과 최근 새해 첫 인터뷰를 가졌다.


▲ 방은진 위원장의 '사랑의 불시착' 출연 모습.
▲ 방은진 위원장의 '사랑의 불시착' 출연 모습.


■ 배우 방은진

방 위원장의 연기복귀는 올해 개봉하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를 통해 성사됐다.이 감독은 지난해 7월 방 위원장에게 작은 역할이지만 우정출연을 부탁했다.1994년 ‘지하철 1호선 1994’ 초연 당시 만난 배우 설경구의 추천으로 성사된 캐스팅이다.방 위원장은 “더 이상 연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시절도 있었다.하지만 “연기도 안 하면 녹슬기 때문에 작품하지 않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두려움이 분명 있었다”고 고백했다.영화 ‘기생충’의 배우 이정은도 “언니 연기하세요.언니는 연기를 해야 해요”라며 옆에서 끊임없이 독려했다.마침 존경하던 이 감독 제안을 받고 배우로 돌아왔다.

평창남북평화영화제를 마치고 심신이 지쳤던 지난 해 10월 초,그는 ‘자산어보’ 촬영을 위해 외딴 섬으로 갔다.오랜만에 직무와 직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고마운 기회였다.대사 한 마디를 위해 촬영 사흘 전부터 촬영장 분위기를 익혔다.카메라 앞에 서는 것조차 낯설 정도로 떨렸지만 오히려 자신을 온전하게 추스르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방 위원장은 “밀려있는 업무도 가져갔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온전히 촬영에 집중했어요.섬 특성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들이 생기면서 치유가 됐죠.”

연기는 역시 그의 본향이었다.동료 배우들의 모습이 자극을 줬다.작품 속 전라도 사투리만 사용하며 표준어를 피했다.첫 촬영 때 “방 감독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니 이상하지?연기가 빨라졌다”던 이 감독도 네 번째 촬영에서 “왔어!왔어!”라고 소리치며 칭찬하기 시작했다.

이후 ‘사랑의 불시착’ 섭외가 들어왔다.남북을 넘나드는 이야기,평화영화제를 위해 일해 온만큼 운명으로 느껴졌다.그가 맡은 배역은 주인공 손예진의 모친.내심 북한사투리를 쓰는 배역을 맡고 싶었다며 잠깐 들려 준 북한말씨는 진짜 북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했다.“촬영장 어디든 배울 것 투성이었어요.연기든 연출이든 창작하는 그 순간이 진정 내가 있을 곳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죠.”



■ 강원영상위원장 방은진

‘사랑의 불시착’ 출연 결정보다 앞선 시기,강원영상위에서는 이 작품 촬영의 도내 유치에 힘쓰고 있었다.드라마 측은 주인공 현빈이 사는 접경지 마을인 북한 장마당 장면을 인제 폐부대에서 촬영하길 희망했다.강원도와 인제군도 이를 위해 힘썼지만 국방부와 산림청 등과의 협의 끝에 무산,충청으로 넘어갔다.방 위원장은 “인제는 아름다운 곳이 많아 올 로케도 가능했는데 아쉬웠다.이데올로기적 부분이 없는 드라마인데도 성사되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했다.대신 횡성 묵계리 폐부대에 촬영을 유치,인제에서 찍으려던 장면 등이 촬영됐다.

이처럼 강원도의 영상인프라 토양을 단단히 하는 것이 또다른 목표다.영화인 입장에서 강원도는 아름다운 자연과 폐부대,폐교 등의 활용공간을 고루 갖춘 넓은 땅이기 때문이다.방 위원장은 영화 ‘자산어보’를 통해 22년만에 폐쇄되는 남양주종합촬영소 마지막 영화의 마지막 컷을 촬영했다.영화촬영의 메카가 사라지는 것이 유독 아쉬운 그에게 강원도는 이를 이을 가능성의 지역이다.“강원도에 세트장 첫 삽 떠 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위원장을 맡았던 것 같아요.구체적 논의들은 앞으로 진행돼야 겠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 PIPFF 영화제 집행위원장 방은진

한반도 평화의 마중물로 만들어보자는 의지로 추진한 영화제이지만 방 위원장 개인의 평화는 앗아갔다.북한전문가 못지않게 통일부 등을 뛰어다녔으나 뜻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았다.방 위원장은 “영화를 잘 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했지만 ‘사막에 두고 온 낙타를 찾는 기분’이었다.모래에 발도 많이 빠지고 헛것도 많이 보게 됐다”고 했다.그가 말한 헛것은 ‘영화제 폐막식 북한 개최’라는 신기루.방 위원장은 “구상 당시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지만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판도가 바뀌었고 예측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었다”며 “도민들이 ‘우리 영화제’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한반도 정세라는 거대한 장벽 속에 느끼는 무력감과 자책감,심적 고통도 극에 달했다.

거센 부침을 겪은만큼 단단해져야 했다.‘평화영화제’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강원도 영화제’로서의 지역 밀착,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계획이다.쉽지 않은 과제다.영화제 명칭도 평창국제평화영화제로 바꿔 새 출발한다.영화제 아이덴티티인 ‘평양시네마’ 섹션과 함께 평화 주제의 아카데미를 고민 중이다.6·25 전쟁 발발 70주년과 맞물린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방 위원장은 “평창이라는 고유이름과 평화의 정체성을 이으면서도 궁극적으로 도민과 함께하는 영화제,즐겁고 무겁지 않은 영화제로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외부요인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차분한 구상이다.“영화제는 돈버는 일도 아니고 돈만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성공의 비밀을 아는데 시간이 필요해요.” 한승미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