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간신문에 난 두 매화.하나는 강릉 초당마을 매화인데,밤새 내린 눈을 잔뜩 품었다.갓 핀 연분홍 잎과 앳된 입을 오므린 봉오리들이 눈과 어울려 또 하나 꽃을 피워냈다.다른 하나는 동해 천곡동에서 카메라에 잡힌 홍매화.초당마을 매화가 눈과 구분이 안 갈 만큼 붉은 빛을 안으로 감추고 있다면,천곡동 홍매화는 붉은 속내를 감추기는커녕 맘껏 토해 냈다.

흰 매화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본색을 잃지 않았고 눈과 잘 어울렸다.홍매화는 붉은 실체를 다 드러내면서도 눈과 충돌하지 않았다.눈의 흰 바탕은 매화의 붉은빛을 돋보이게 했고,매화의 붉은 속성이 눈의 존재를 일깨웠다.흰 매화는 자신을 누르는 것으로 눈과 잘 어울렸고,홍매화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눈과 조화를 이뤘다.눈과 매화가 달랐고 흰 매화와 홍매화가 달랐으나,눈과 매화가 어울려 아름다웠고 한 폭이 된 눈과 홍매화가 눈을 씻어줬다.

눈과 매화는 한참 다르다.눈은 끝까지 겨울을 자처하는 존재 증명,매화는 봄의 전령사다.너무 다른 눈과 매화가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극적으로 조우한 것이다.눈과 매화의 짧은 만남이 만든 예술이 설중매(雪中梅)다.둘은 개체인가 하면 합체이고,합체인가 하면 개체다.다른 속성,짧은 시간으로 교직된 이 조합은 선후와 주종을 불허한다.

남송 때 시인 노매파(盧梅坡)도 이 궁합을 눈여겨봤다.그의 ‘눈과 매화(雪梅)’라는 시가 이렇게 전한다.“매화와 눈 봄 다투어 서로 지려하질 않으니(梅雪爭春未肯降)/시인은 붓 던져 글로 평하길 그만두었지(騷人閣筆費評章)/모름지기 매화는 눈보다 서푼 덜 하얗지만(梅須遜雪三分白)/눈은 매화보다 은은한 향기가 부족하다지(雪却輸梅一段香)”

복수초를 봤다,매화가 피었다는 남녘 얘기를 이미 들었으나 내 고장 설중매 소식이 새삼스럽다.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불길한 전조(前兆)였던가.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봄기운을 막아서는 이때,동해안의 설중매가 봄이 올까? 하는 의심을 씻어준다.강릉과 동해뿐 이랴.강원도 땅 곳곳에 아직 신문에 나지 않는 많은 설중매가 있을 것이다.

김상수 논설실장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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