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웃음 짓고 ‘둥근 집’ 짓던 ‘짱돌’같은 남자
춘천 샘밭에 바보시인,‘유기택’
눈썰미로 배운 기술 바탕
춘천 율문리에 손수 지은 집
강원도 ‘아름다운집’ 선정되기도
첫번째 시집 ‘둥근집’부터
작년 ‘짱돌’까지 네권 발간
짧고 짠한 시로 독자에 감동 선사
먼데서 찾아오는 시인
그림 들고 나타나는 화가

▲ 유기택 시인
▲ 유기택 시인

샘밭에 늘 웃는 시인이 있다.

그는 매일 시를 쓴다.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저녁 9시면 잠이 든다.그리고 새벽 두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시를 쓴다.새벽녘에 쓴 시는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판에 등록된다.아침이면 전국에 있는 독자들이 그의 시를 읽게 된다.유기택 시인의 시를 읽는 일은 행복이 한아름 밀려오는 일이다.

시인 유기택.그의 집 느티나무 밑엔 빨간 우체통이 있다.겨울이 오면 빨간 우체통은 눈을 기다린다.신기하게도 눈이 오는 날은 상수리나무 이파리 같은 엽서 한 장,약속이나 한 듯이 들어 있다.겨울콩새처럼 먼 데서 날아온 낯선 안부를 시인은 몇 번이고 읽는다.

그런데 올핸 눈이 안 왔어요.그러다가 며칠 전,눈이 왔어요.

2월 17일에 내린 눈은 함박눈이었다.

저 놀라운 흰 이리떼

마구 쏟아져 밀려오구 있어요

눈이 내려요
이 짧은 세줄 시가 그날 모든 이를 설레게 했다.

이렇게 무작정 눈을 내리면 어떡하라구…
어두로 가야 할지 길을 까먹었어유
 

이 두 줄의 시로 하여 모든 이는 길을 잃었다.그래도 좋았다.다들 천진한 웃음을 함박눈처럼 터뜨렸다.나는 그런 날이면 시인은 장작을 팬다고 생각한다.쩌렁쩌렁 원시림을 울리는 그의 도끼질을 상상한다.벌판 저쪽에서 그에게로 오는 한 사람,그는 과연 누구일까를 곰곰 생각한다.
 

유기택 시인이 출간한 시집들
▲ 유기택 시인이 출간한 시집들

시인의 집엔 이따금씩 먼 데서 시인이 찾아오거나 인근에 있는 화가가 예고도 없이 불쑥 그림을 들고 나타난다.시인의 응접실 벽엔 아크릴화나 시화가 오래 된 화석처럼 걸려 있다.그들은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눈다.그 이야기소리가 어찌나 조용한지 바깥으로 새나가는 법이 없다.그래서 비밀의 대화는 늘 침묵의 시가 되는 것이다.

손님들이 가고 나면 시인은 손에 끌을 들고 나무를 깎는다.벼락 맞은 대추나무나 향나무로 목걸이를 만든다.정성스레 사포질을 하여 하나하나에 소원을 빈다.벽조목 목걸이는 잡귀를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속설이 있다.한 달에 한 번씩 여는 아트장터에 시인은 자신이 깎은 목제품을 보자기에 싸서 가져간다.그것들을 시인은 길거리에다 벌여놓고 자신이 쓴 시집과 함께 판다.목걸이 하나가 팔리면 벙긋이 웃고,시집 한 권이 팔리면 활짝 웃는다.그 함박꽃처럼 웃는 웃음이 바보 같아 보인다.아마도 시인은 웃음을 파는지도 모른다.물론 그날 판매한 돈은 고귀하게도 파장된 장터에서 마시는 막걸리값으로 소진된다.
 

▲ 유기택 시인의 작업실
▲ 유기택 시인의 작업실

젊었을 적,유기택 시인은 하늘을 나는 사나이였다.그는 공수특전단 낙하산병이었다.허공에 몸을 던지던 그때 그는,무슨 시를 썼을까.그는 그 하늘에서 자유로웠을까.그럼에도 그가 걸어온 길은 시와는 전혀 다른 길이었다.그는 여러 일을 전전했다.공예점도 운영하고 건설현장 막일도 했다.그러다 눈썰미로 집 짓는 일을 배워 동화 같은 집을 짓기 시작했다.십여 년 전 춘천 율문리에 지은 집은 강원도에서 주는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지금 시인이 사는 집도 그가 손수 지은 집이다.그 집에선 피아노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지금은 잠시 부인이 하는 피아노교습소가 멈추었다.그래서 시인은 피아노 차를 몰지 않는다.아이들이 사라진 시인의 집에 더 이상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시인도 실업자가 되었다.그래서 그는 그를 자칭 백수라고 칭했다.슬기로운 백수생활의 경험수칙 시리즈를 페북에서 읽은 독자들은 때론 안쓰러워하고 때론 조용히 웃었다.

시인은 이때까지 네 권의 시집을 냈다.많지 않은 시집이다.그러나 짧고 가슴 짠한 시,기억 속에 잊혀져 사라진 이야기는 늘 독자를 감동케 한다.시집 제목만 봐도 시인의 시가 참으로 멀고 아득함을 금세 느낄 수 있다.2012년에 낸 첫 시집 ‘둥근 집’을 시작으로 그는 ‘긴 시’,‘참 먼 말’을 상재했고,작년 2019년에 ‘짱돌’을 냈다.‘긴 시’는 아주 짧은 시편들로 묶여 있고,‘짱돌’은 마흔 아홉 번의 게릴라 북콘서트를 가졌다.앞으로 100회를 채울 거라고 한다.한두 명만 만나도 좋은 것이어서 ‘게릴라 북콘’이라 이름했다.식당이든 기차역 대합실이든 다 좋은 것이다.시를 읽을 공간만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유기택 시인은 담담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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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율문리에 위치한 유기택 시인의 자택.강원도 선정 ‘아름다운집’이기도 하다.

봄이 오면 시인은 소양강댐 하류 둑을 걸어 자신의 텃밭으로 가리라.그리고 거기에 상추와 가지와 토마토 모종을 놓을 예정이다.시가 열리듯 그것들이 자라는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콧구멍다리 저쪽에서 짙은 안개가 몰려오면,그는 샘밭시장 단골집을 향해 발길을 옮길 것이다.그곳에,오랜 친구들이 화석처럼 앉아 그를 아득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춘천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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