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춘천출신 정은비 퍼커셔니스트
유튜브 라이브 공연 ‘마르시아스’
4악장 20여종 동서양 악기 연주
3·1운동 희생자 추모 음악 선봬
“기미독립선언 세계인이 알아야
함께 바랐던 염원 예술로 남겨”

▲ 정은비 퍼커셔니스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인들이 사회적 이슈에 눈감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정은비 퍼커셔니스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인들이 사회적 이슈에 눈감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그리스 신화 속 정령 마르시아스는 위대한 예술가다.그의 이야기는 세상의 첫 번째 북의 탄생에 대한 것이다.연주에 도취되어 큰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던 음악가 마르시아스는 ‘음악의 신’ 아폴로와 음악대결을 벌이게 된다.대결에서 승리한 아폴로는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매달아 산 채로 가죽을 벗겨내어 속이 빈 나무에 그의 가죽을 씌워 북으로 만들었고,그 북이 연주될 때마다 고통을 느끼게 했다.

춘천 출신 퍼커셔니스트 정은비(32)가 지난 1일 축제극장 몸짓에서 선보인 유튜브 라이브 공연 ‘마르시아스:타악기 독주를 위한 심포니’의 의미는 특별했다.공연의 부제가 ‘3·1만세운동 희생자를 추모하며’였기 때문이다.공연은 당초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3·1절 101주년을 맞아 특별공연으로 예정됐던 무대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취소,유튜브 라이브 중계와 녹화방송으로 대체됐다.정은비는 90여분간 관중이 없는 공간에서 홀로 20여종의 동서양 악기를 다루며 혼신을 다한 연주를 펼쳤다.마치 무속의 의식처럼 희생된 영혼들을 불러 내어 그들을 위로하는 울림의 자리였다.

▲ 티치아노 작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아폴론’
▲ 티치아노 작 ‘마르시아스의 살가죽을 벗기는 아폴론’

이날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정은비는 타악 심포니 마르시아스에 대해 “3·1절 100주년을 맞아 네덜란드 작곡가 코어드 마이에링과 상의해서 쓴 작품”이라며 “오케스트라의 느낌을 최대한 재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다양한 소리를 내는 타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음악은 ‘예술’,‘도전’,‘살껍질을 벗기우다’,‘카타르시스’의 4악장으로 구성돼 있다.지난 해 독일의 유명한 현대음악제인 짜이트스트뢰메의 폐막작으로 초연,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독일 다름슈타트 음악학교 학장인 작곡가 마이에링 또한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영감을 받고 그리스 신화 속 마르시아스를 떠올리면서 작곡했다고 한다.3·1만세운동을 통해 평화와 독립을 외쳤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정복하려 했던 모습에서 아폴로가 마르시아스에게 했던 모습을 연상한 것이다.

특히 3악장에서 정은비는 기미독립 선언서 원문을 직접 낭독했다.독일 공연 당시에도 기미독립선언서 내용이 그대로 팜플렛에 실렸다.정은비는 “어느 나라도 역사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기미독립선언서는 한국말로 쓰여졌지만 모든 세계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특히 “독일 공연은 북한 사람들이 직접 와서 볼 수도 있고 100년전의 염원을 담기 위해 원문을 직접 해석했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독일에서 활동중인 정은비는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콘서바토리 국제음악콩쿨 타악기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등 이미 정상급 타악주자로 정평나있다.타악기의 매력에 대해 정은비는 “가장 원초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북이라는 악기를 가지고 있듯이 많은 것을 분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악기이자 음악”이라고 말했다.

춘천 출신 김운성·김서경 조각가 부부가 만든 ‘평화의 소녀상’ 또한 이번 무대의 핵심 요소였다.아시아 최초로 클래식 공연에 이 조각상이 올랐기 때문이다.정은비는 연주 마지막 부분에서 소녀상을 돌며 해원 의식과 함께 소녀상의 손을 잡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정은비는 “베를린 공연 당시 일본 측에서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었다”며 “독일은 표현의 자유가 잘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경우 고소하려는 결심까지 했었다”고 회상했다.

춘천 봉의고 출신으로 도내에서는 강원청소년교향악단,호반콘서트밴드 등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정은비는 “어릴 때 강원도 흑백지도가 있어서 각 지역에서 공연할 때마다 색을 하나씩 지웠다.어렸을 때의 경험이 지금의 음악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어린 시절 활동기억을 떠올렸다.그는 “그때 북쪽을 마저 지우지 못했는데 그걸 보신 많은 분들이 감명을 받았었다”며 “분단이 돼 있어도 작품은 영원히 남는만큼 우리가 함께 바랐던 염원을 예술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음악생활의 방향에 대해 물었더니 결기 넘쳤던 이전 답변과 비교하면 의외로 담담한 답이 돌아왔다.정은비는 “그냥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려고 한다.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공연들이 취소됐지만,오히려 방에 갇히게 된 상황이라 연습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가는 것은 아쉽지만 마르시아스라는 작품을 길게 보면 이러한 상황조차도 한국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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