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8일 여성의 날, 책으로 보는 여성 이야기
여성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유
관념에 도전하고 자유 쟁취한 여성사
미투운동 촉발 김지은씨 법정투쟁기
“ 모든 차별이 없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


[강원도민일보 김여진 기자]“난 장엄한 실제 역사에는 관심을 가질 수가 없어요.교황이나 왕들 사이의 싸움이나 전쟁,그도 아니면 돌림병 얘기만 하니까요.남자들은 모두 옳고 잘난 것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여자들 얘기는 아예 나오지도 않잖아요”(제인 오스틴,노생거 수도원)

여성의 역사는 왜 기록되지 않았을까.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로자린드 마일스의 책 ‘세계여성의 역사’에서 찾았다.그는 “국가나 시대에 상관없이 여성의 일이 갖는 놀라운 연속성이야말로 그것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지난 해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이 ‘강원도 탄광지역 여성의 노동과 삶’을 발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그간 남성 광부에 가려져 있던 광부들의 아내이자 선탄부 광부,지역 주민,부녀회장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 주목받았다.탄광지역 여성 8명의 구술은 이들이 일상을 챙기지 않았다면 광부와 석탄의 역사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음을 생생히 반증했다.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매년 이날을 전후로 강원도에서도 여성연대를 위한 행사나 세미나 등이 열렸고,올해도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 19로 취소됐다.대신 여성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돼 왔는지,어떻게 권리와 자유를 쟁취해왔는지 풀어낸 책들을 소개한다.일상의 연속성이라는 위대함,그 중심에 있는 여성들의 역사와 오늘날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세계여성의 역사=로자린드 마일스 지음 신성림 옮김

저자는 인류 역사를 지켜 온 ‘위대한 절반’의 사라진 흔적을 찾는다고 했다.여성이 역사에서 기록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분석했다.“여성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광경,냄비를 젓거나 마루를 청소하는 광경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만큼 자연스러워서,근대 이전에는 마치 공기가 그랬던 것 처럼 어떤 과학적 분석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고.해야할 일이 있으면 여성이 그 일을 했다.교황과 왕,전쟁,전제정치와 정복 등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눈부신 활약의 배후에서 여성들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실제로 역사라는 직물을 짜왔다.그 가운데 여성들이 당한 지배와 통치,이후 이뤄진 반전의 시대에 대해 얘기한다.


100가지 물건으로 다시 쓰는 여성 세계사= 매기 앤드루스·재니스 로마스 지음 홍승원 옮김.

세계 여성사를 100가지 흥미로운 물건들로 나눠 훑는다.여성물건 박물관을 보는 듯하다.그 전시품에는 여성을 옭아맨 수단도 있고,여성들의 재능이 오롯이 담긴 훌륭한 유산도 있다.여성억압의 대표적 상징 코르셋과 18세기 영국의 ‘아내 판매 광고’,16세기 제멋대로 말한다는 이유로 스코틀랜드 여성 입에 채워진 굴레 등은 끔찍하다.반면 마리퀴리의 책상,최초의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우표,평범한 주부가 개발한 전기냉장고,미니스커트의 창시자로 알려진 디자이너 메리퀀트의 망토,현대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자 파크스의 머그샷을 보면 관념에 도전하고,마침내 자유를 쟁취한 여성들의 일대기를 더듬어갈 수 있다.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지음.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폭로로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김지은씨의 법정투쟁기와 그가 견딘 시간들을 담았다.2018년 3월 방송에서 피해 사실을 처음 밝힌 이후 2년만이다.지난해 9월 대법원 최종 유죄가 나오기까지 그는 “왜 그렇게 여러번이나 당했느냐”,“좋아했던 것 아니냐” 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고,일상을 살아도 될지 고민했다.책은 첫 폭로 이후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세상을 향한 두번째 말하기”라고 저자는 표현한다.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 싸움 끝에서 권력과 지위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성폭력은 남녀 사이가 아니라 권력의 왜곡된 사용에서 촉발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강남순 지음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입문서다.저자는 페미니즘을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비유한다.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어 한번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작은 방이 아니라는 것이다.과연 페미니즘은 정치적인가,여성만을 위한 철학인가,역차별이란 과연 무엇인가 등 페미니즘을 둘러싼 단순하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쉽게 풀어낸다.여성의 날을 앞두고 이 책을 낸 강남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 교수는 “페미니즘의 궁극적 지향점은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회정치적 권리를 보장받는 그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며 “성별 뿐만 아니라 인종·계층·성적 지향·장애로 인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했다.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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