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국립박물관 특별도록 발간
오백나한 200여컷 이미지 수록
나한 신앙 역사·양식·도상 정리
정현종·이근배·전상국 글 담겨
다양한 몸짓·표정 볼거리 풍부
코로나19 여파로 상설전시 휴관


[강원도민일보 김여진 기자] 바이러스 옮을세라 모두가 마스크 속으로 얼굴을 숨겼다.검고 흰 마스크 뒤로 가려진 동료와 친구,선후배의 얼굴 표정을 짐작할 길은 눈 모양이나 미간 주름 뿐.온전한 얼굴이 그립다.표정을 숨기지 않고,미소를 아끼지 않았던 오래 전 얼굴…익살맞고 따뜻하고,때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현대인들을 맞이했던 창령사 터의 오백나한이 특별도록으로 나왔다.

춘천국립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특별 도록 ‘창령사 터 오백나한,나에게로 가는 길’은 얼굴들이 모두 가리워진 요즘 같은 시기에 얼마간의 해방구가 된다.이번 도록에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 사진을 포함한 200여 컷의 이미지와 글이 함께 담겼다.앞서 나온 연구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추리되,전시 공간에서는 자유롭고 편안한 감상을 위해 과감히 생략했던 세부 정보들을 넣었다.나한 신앙의 역사와 양식,도상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정리했다.전시를 이미 본 관람객들은 감상의 기억에 지식을 얹을 수 있다.

오백나한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선물꾸러미다.오백나한의 다양한 몸짓과 표정을 앞에서 보듯 감상할 수 있다.아직 전시를 못 본 관람객들에게는 미리 공부하고 가기에 좋다.이번 도록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정현종·이근배 시인,전상국 소설가의 글도 곁들여져 마음을 녹인다.이들은 박물관 측이 제공한 오백나한의 사진을 본 후 몇 컷을 직접 골라 글을 붙였다.조선시대 고승들의 선시들도 함께 수록돼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 '창령사 터 오백나한,나에게로 가는 길' 표지
▲ '창령사 터 오백나한,나에게로 가는 길' 표지

나한은 인간의 경계다.인간으로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존재,깨달음을 얻었지만 중생을 위해 그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잠시 유보한다.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국립춘천박물관은 도록에서 나한에 대해 “신단에 위치하지만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존재”라고 정의했다.측면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거나,생각에 잠겨 턱을 괴고 있는 모습,바위 뒤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흥미로운 나한들도 있다.이에 대해 박물관은 “다양한 시선은 일군의 조각이 완성되어 건물 안에 나한상을 봉안할 때의 배치와 구성을 고려한 결과물로 생각된다.얼굴 표정과 이목구비의 표현도 상당히 독자적”이라고 설명했다.‘원만한,돌로 사라져가는’이라는 소제목의 글에서는 “이 나한상들은 그 원만함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며 튀어나오는 신체들을 깎고 밀어 넣어 (중략) 세월에 닳고 물에 깎여나간 돌들처럼 둥글둥글 원만하다”고 했다.쉴새없이 툭툭 튀어오르는 날카로운 소식들에 매일같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예민의 시대에 위로가 된다.김상태 춘천국립박물관장은 펴내는 글에서 “창령사터 오백나한의 몸짓과 표정은 그저 수수하고 질박하지만 인간본연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신묘한 힘이 있음을 알게 됐다.까닭도 없이 눈물을 흘리고,타인에게 말하기 힘들었던 내면의 슬픔을 위로받았던 경험을 신앙고백처럼 말했다”고 전했다.



아쉬운 점은 지난 해 말부터 다시 선 보였던 창령사 터 오백나한 상설전시가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문을 닫은 것.춘천국립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 방침에 따라 오는 22일까지 휴관 기간을 연장했다.참여형 전시로 마련돼 관람객들이 오백나한 사이사이에 직접 쌓아나가며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연출하던 돌탑의 성장도 잠시 멈췄다.가사를 뒤집어 쓰고,혹은 무릎을 감싸쥐고,지그시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선을 수행해 온 나한들도 불 꺼진 전시실 안에서 바이러스의 잠식과 소멸을 기다리고 있다.근원의 미소로 관객들을 다시 맞을 날을….

김여진 beatl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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